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마고 May 15. 2018

애 볼래? 밭 맬래?

복직 일주일, 궁극의 질문

1. 아들이 둘인 남자 선배가 다시 회사 나오니까 좀 어떠냐고 물었다. 사실은 좀 무덤덤하다. 일단 휴직 중에 상상했던 현관문 앞에서 아기와 눈물의 이별을 하는 등의 드라마틱한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시터에게 아기를 맡기고 오전에 집에서 나가 저녁이 다 되어 귀가한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평화는 엄마 아빠가 나가봤자 ‘지까짓 것들이’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온다는 걸 믿고 있는 건가. 그래서인지 그녀는 아침마다 쿨하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고 돌아선다. 게다가 아직 본격적으로 ‘빡센’ 업무에 돌입하지 않았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제작 피디의 비인간적인 스케줄 말이다. 그래서 좀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몸은 확실히 더 편하네요.”


미래엔 드라마가 펼쳐질 수도 있겠지만


선배는 웃으면서 특유의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어. 애 볼래? 밭 맬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구어체로 된, 가르침이 아니라 의문문으로만 구성된 ‘옛 말’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100프로 다 밭 맨다는 얘기지.”
나는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정말 반가운 기색을 했다. 이 선배 육아 제대로 해 봤구나. 그리고 하고 있구나.


아니 나는 밭 맬래 왜냐하면 애 본 공은 없으니까
알고 보니 그 ‘옛 말’을 가사에 적극 차용한 스푸키 바나나의 소방관 아저씨(1998)


조금 이따가는 다른 남자선배가 같은 질문을 했다. 오래간만에 출근하니까 어떻냐는.
나는 이 선배의 육아 경험이라든지 가족 관계 등 사적인 정보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말로, 그가 육아나 집안일을 평소에 얼마나 쉬운 것으로 보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쉬다가 갑자기 일하러 나오니까 몸이 힘들지?”

아, 두 사람의 이 극명한 온도 차.
이 극명한 차이만큼 급격하게, 한국 문화도 변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다.

2. 퇴근길에 앞차에 붙은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를 봤다. 내 차를 포함한 많은 차가 영어로 ‘Baby on board’를 붙이고 있고, 또 다른 많은 차들이 재치 있답시고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어요(우웩!!!)’ ‘보물 1호가 타고 있어요’ 등의 변형된 버전을 붙이고 다닌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식 천박함


그런데 오늘 본 차의 스티커가 가장 본래의 의미에 가까운 데다 뭉클하기까지 해 기록해둔다.



‘위급상황시 아이를 먼저 구해주세요.’



‘Baby on board’ 스티커의 본래 목적은 사고 등 위급 상황에서 몸집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아기의 존재가 차 안에 있음을 알리고자 함이다. 아기가 있으니 운전을 살살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운전을 살살할 사람은 뒷차가 아니라 운전자 본인이다)

본래의 목적은 알고 있었으나 별 생각 없이 Baby on board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다가, 사실은 나에게도 저 스티커와 같은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음을 생각하고, 괜히 혼자 말랑말랑해져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왔더니 평화가 또 쿨하게 인사도 안 하고 책부터 읽어달라고 했다. 히히.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 후 홈트 1년, 나는 변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