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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Apr 03. 2019

좋은 엄마

매니저들과 술을 마셨다.


나와 일하는 필드가 겹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접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일 얘기할 때가 가장 재밌는 관계. 하지만 그 밤은 길었고 우리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니까, 또래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했다. 실제 또래 친구들과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다. 돈 얘기 같은 거.


나와 7명의 매니저, 합해서 총 8명 중에 결혼을 한 사람이 셋이었다. 혼자 산다는 매니저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차 두 대 집 한 채 기준으로 월 소득이 얼마 이상 되어야 생활이 쪼들리지 않는지 물었다. 체험 삶의 현장. 어떤 집이냐 어떤 차냐 삶의 양식이 어찌 되느냐를 다 빼고 이런 얘기를 하게 된 상황이 정말 어색했지만 잠깐의 고민을 거쳐 내 기준의 금액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꼭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연출할 것이냐를 회의하는 것처럼 곧 아래의 단어가 등장했다.


비용 절감.


한 매니저가 얼마 전 아들을 낳아 80일이 되었다고 했다. 비용 절감은 흔히들 말하는 '애는 누가 키워요'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 단어였다. 애는 베이비시터와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고모가 다 함께 키우고 결국에는 베이비시터 월급이 어느 정도 된다는 말을 하고 나서였다. 그 돈 주고 남에게 아기를 맡기느니, 엄마가 일 안 하고 아기를 보면 '비용 절감'도 되고 아기 정서에도 좋지 않느냐는 말을 그 80일 된 아기 아빠가 된 매니저가 했다. 너무 클리셰라서 나는 말문이 막혔고, 부끄럽게도 분위기를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했다.


가성비를 따지기에는 너무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아니냐고.


베이비시터의 월급으로 나가는 돈과 아내가 벌어들이는 돈을 비교해서 무엇이 어떻게 플러스 마이너스가 되느냐를 따지는 건 정말 숫자의 문제에만 머무르는 근시안적 사고 아니냐고. 아내의 돌봄 노동, 가사노동, 아기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데서 파생되는 감정노동, 종종 생길 아기와의 갈등, 혹시라도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지는 않나 생각할 아내의 회의감과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아기의 행복에 미칠 영향, 가족 구성원의 감정이 본인의 감정과 인생에 미칠 영향을 다 계산에 넣고도 '비용 절감'이란 단어를 그렇게 쉽게 꺼낼 수 있겠느냐고.


그 순간, 방송국에서 내가 일하면서 뱉는 한숨 흘리는 눈물 짜릿한 희열 벅차오르는 보람 이 모든 다양한 감정들이, 그리고 내가 내 이름으로 이뤄왔던 모든 일들이 고작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논리로 퉁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전 후배가 친구 이야기를 꺼내면서 '좋은 엄마' 운운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후배의 친구가 결혼을 했고 곧 아기를 낳을 생각인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일을 관둬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후배에게 바로 반문했다. 꼭 아기 옆에 24시간 365일 머물러야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거냐고. 아기에게 인간으로서 성취감을 누리고 자기 자리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좋은 엄마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2019년 4월 2일 오전 9시 26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내 차 안, 아이와 나의 대화.


"엄마, 아빠 어디 갔어요?"

"아빠는 약국 갔지!"

"약국?"

"평화야,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지?"

"어... 약 주는 사람!"

"맞아. 엄마는 오늘 어디 가서 일하지?"

"어... 회사!"

"맞아! 엄마 회사는 방송국이야."

"방송국? 엄마는 방송국에서 일해?"

"응, 평화가 텔레비전 보면 퍼핀 가족도 나오고 시몽도 나오잖아? 엄마는 그런 거 만드는 사람이야."

"우와!"

"이제 누가 물어보면 엄마는 방송국에서 일해요 라고 하면 돼."

"엄마는 방송국에서 일해요!"


잠시 후, 평화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머리 귀엽다!"

( 나는 그 날 머리를 꽉 묶어 한껏 추켜올린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평화야, 네가 엄마보다 더 귀여워."

"아니야! 엄마가 귀여워."


평화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 준비를 위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 집은 14층이다. 14층까지 걸어 올라오는 길에 평화를 배 안에 품고 있던 시절이 기억났다.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왔을 때 나는 매일매일 그 계단을 올랐다. 아기의 딱딱한 머리가 자궁 아래로 처지면서 회음부를 압박하는 게 느껴졌었다. 우리는 그때도 함께 계단을 오르내렸었는데.


그 아기는 이제 내가 귀엽다고 한다. 엄마가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도 알고, 하루 종일 함께 있지 못해도, 어느 날은 전혀 못 봐도, 하루에 겨우 30분 살갗 부비는 것만으로도 엄마가 제일 좋다고 한다. 결혼 후 쭉 전업 주부로 사신 우리 엄마도 "육아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누누이 말했었고, 나는 분명히 그 말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용을 절감하지 않고,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면서도. 자, 좋은 엄마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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