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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Mar 20. 2017

'무한반복 엄기영'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는 최초의 꿈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꿈은 엄기영 앵커의 얼굴이다. 아마 대여섯살 쯤에 꾼 꿈이 아닌가 한다. 꿈은 뉴스데스크 화면으로 시작한다. 당시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의 배경은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 엄기영 앵커의 바스트 샷 -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전문용어로 PGM(프로그램 모니터)이었다 - 을 포함한 서로 다른 화면의 나열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잘 보면 위쪽 가운데 있는 화면이 시청자들이 보는 화면과 같은 PGM이다.

나의 꿈은 일종의 프랙탈이었다. 먼저 엄기영 앵커의 바스트 샷이 들어 있는 화면에서 출발해서, 배경에 있는 PGM으로 줌인해 들어간다. 그러면 처음에 보았던 화면과 같은 화면을 만난다. 또 그 화면 안에 있는 배경 안 PGM으로 줌인해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플롯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는, 그저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였다. 아마 피디 4년차 이후로 계속 계획해 왔던대로 애프터이펙트 사용법을 배우고 익히는 데 성공했다면, 지금쯤 그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사선이 보이고, 픽셀이 보이게. 뭔가 베이퍼웨이브스럽게.



내가 이 꿈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후 한동안 어린 내가 이 꿈을 잠들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졸리지 않은데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양 한두 마리 세는 대신에 '무한반복 엄기영'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면 어디론가 영원히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면서 금세 잠이 들고 말았다. 이불에 오줌을 지리지 않게 되고 나서는 서서히 이런 버릇을 관둔 것 같지만, 그 이미지는 꼭 내 인생의 테마처럼 남아 있다. 이 테마 이미지와 나의 직업을 연결시킨다는 것은 물론 비약이지만, 일을 하면서 이 이미지가 떠오르면 어딘가에 내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는 듯한 안정감이 든다.


젖을 다 빨고 품에서 잠든 딸 평화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무한반복 엄기영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평화의 귀 때문이다. 평화의 귀는 좁은 자궁에 웅크리고 있었던 그녀의 역사를 증거한다. 어른 귀와는 다르게 살 한 겹이 눌리고 접혀 있는 것이다. 엄마는 모유수유를 하는 내 곁에 앉아 평화의 귓바퀴를 만지면서, "원래 젖 먹이면서 이렇게 귀 펴주는거야." 하고 자연스럽게 어떤 관습을 전수해주었다. 할머니-엄마-딸 3대가 가만히 앉아 그러고 있는 모습을 객관화해보니,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엄마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젖을 먹이고 귀를 펴주는 무한반복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이미지 전개는 나에게 참을 수 없는 졸음을 가져다준다. 그 오후, 가슴팍에 와닿는 평화의 숨결을 느끼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내 인생의 무한반복 이미지 두 번째. 귓바퀴를 만지는 감촉.


평화는 자면서도 젖 빠는 꿈을 꾸는지 5-10초 간격으로 허공에 빠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평화는 꿈을 꾸고 있을까. 만일 꾸고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꿈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부모의 손길을 어떠한 심상으로 간직하고 있다면 삶의 불가사의한 불안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태내에서의 기억을 아이가 서너 살까지는 갖고 있다가 서서히 잊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로 자연주의 출산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이야기인데, 증언이 꽤 된다. 만일 그 증언 중 하나처럼 평화가 자궁에서 물소리를 들었다느니, 나올 때 너무 밝아서 놀랐다느니 하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그 이야기를 반드시 기록하도록 해주고 싶다. 기록은 불안을 견디는 또 다른 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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