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할매 Jan 19. 2017

아버지의 아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나네

남편은 작은 배낭을 매고 산길을 오른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인데다 요즘 삼복더위로 세상이 지글지글 타는 듯했다.

남편은 지금 뜨거운 햇볕이 내리꽂히는 산길을 말없이 천천히 오른다.등산용 지팡이를 탁탁 소리내어 짚으며 몇 걸음 앞서 가는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편의 저 작은 배낭 속엔 30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유골분이 모셔져 있다. 오늘 새벽 서울에서 강원도 산소로 와서 개장을 하고 아직 다 분해되지 못한 유골을 수습, 안식원에서 화장을 하고 상자에 모신 아버지. 그 상자를 직접 등에 지고 이 뜨거운 산길을 오르는 아들!

아버지가 아직 여기에 계실 리는 없지만 안 계신 것도 아니니 남편 마음속이 어떤 생각일지 알 수 없다.


남편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든든한 존재여서 언제고 세상에서 상처받은 어린 아들을 품에 안았던 아버지였을까?아니면 씩씩한 남자로 자라야 한다며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였을까?

어느 쪽이든 남편에게는 참 버거웠던 아버지였던  것 같다. 남편은 청소년기 동안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나 보았다. 그래도 자신의 승용차에 아버지 유골이 담긴 관을 싣고 안식원으로 향하면서 부모님을 모두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모시고 간다는 사실에 평화로워 보였다면 이상한 표현일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다만 남편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나는 30년 전 결혼 초에 짧은 기간 함께 살았던 남편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사회적으로 훌륭한 삶을 사신 분이었다. 그런 분이 흔히 그렇듯(?) 집안에 무심하셨다. 그러다가 쇠약한 노인이 되어 집에 머물러 계시게 되자 이미 자라서 사회활동을 하거나 결혼 등으로 바빠지거나 떠나간  자식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쇠약해지거나 노환으로 아버지들은  쓸쓸하게 이생을 떠나셨는데  내 아버지는 내가 열일곱 살일 때 가셨고 남편의 아버지는 새 며느리인 내가 가족이 된 이듬해에 떠나셨다.


아직 정상까지 가려면 멀었다. 남편은 아버지 산소를 개장하여 잘 수습한 유골분을 태백산 어느 한 산자락에 뿌려드리고 싶어했다.

오늘 새벽부터 이어져 온 일들이 꿈속에서의 일인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를 오픈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