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복 중에 복은 휴가복, 휴가 중에 휴가는 겨울 휴가다. 월요일인 내일 아침 서울은 영하 15도라고 하는데 나는 따뜻한 돌침대에 누워서 게으름을 피울 작정이다. 그리고 다들 회사로 출근할 시각,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정읍 시내 CGV에 조조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마침 내가 고등학교 때 나온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국 버전 영화가 개봉했다. 곧바로 예매했다. 아직 예매한 사람이 상영관에 나 혼자다. 월요일 조조영화, 그것도 나 혼자 스크린 독차지라니. 내일 아침 엄마호텔의 따뜻한 조식을 먹고 영화관으로 간다. 영하의 날씨가 두렵지 않다.
요즘 오후 4시만 되어도 어스름이 깔리고 5시가 되면 깜깜한 겨울밤이다. 앙상한 가로수 사이로 일찍 문을 닫은 가게들이 보이고 찬 공기가 온몸을 휘감기까지 하면 마치 러시아에 온 듯 이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가본 적은 없지만 겨울에 밤이 그렇게 길다는 북유럽이 이런 느낌일까. 저녁 6시도 되지 않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누우면 7시부터 잠들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엄마의 '가정 내 거리두기'로 드넓은 안방이 내 독차지가 된 터.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혼자만의 시간을 갖노라면 세상 행복한 게 나다.
정읍 벚꽃로와 천변로에 새로 생긴 '달하다리'. 밤에 보니 너무 예쁘다. 공사 비용이 105억원이 들었단다.
코로나 확진자 천명의 공포가 엄습한 오늘 나는 정읍의 새로 생긴 스터디 카페를 유랑 다녔다.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라 24시간 하는 스터디 카페도 있다. 갑옷 같은 고요함만 조금 견디면 책 읽고 글 쓰고 인터넷 하기에 딱이다. 자리가 예전 독서실 책상보다 조금 편하게 돼있다. 인테리어만 달라졌지 예전 독서실과 공부하는 분위기는 다름이 없다. 수능이 끝났는데도 학생들이 많았고, 책 대신 전자기기 켜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교 시절 월 7만원?(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을 주고 잠까지 잤던 정읍여고 옆 독서실이 생각났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매일 먹고 자고 했던 게 나름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달랑 책상 하나가 유일한 내 공간이었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마냥 좋았다. 매주 반찬을 가져가 독서실 냉장고에 넣어놓고 독서실에서 파는 공깃밥을 구매해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이불과 베개를 챙겨가 책상 밑에서 잠도 잤다. 일종의 하숙집 같은 독서실이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친구들과 한 방을 쓰는 게 들뜨고 신이 났다.
그땐 집이 아닌 곳에서 먹고 자는 게 그렇게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제 발로 애타게 걸어 들어온다, 엄마호텔로. 그땐 서울에 가는 게 간절한 꿈이었는데, 지금은? 탈서울이 소망이고 정읍에 가는 게 소원이다. 난 어쩌다 이렇게 서울살이에 지쳐버린 걸까.
집 앞에 새로 생긴 스터디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