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증과 성격의 상관관계 (1)
어렸을 때부터 나는 굉장히 소심하고 내향적이었다. 어른들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엄마 뒤로 숨기 일쑤였으며, 유치원 입학 전 놀이방에서 학대를 당했을 때도 부모님께 말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외국에서 살았을 때에는 활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외국 한 시골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그 동네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인종차별을 한번이라도 당했을 법도 했을텐데, 운이 좋게도 그들은 작고 마른 동양인 아이를 예뻐해주었다.
동네 어른들, 학교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한테 특히 인기가 많았었다. 매일 동성과 이성 불문하고 러브레터를 잔뜩 받아 하루하루 책상이 편지로 꽉 찰 정도였다. 대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랑 놀아줘"하는 류의 순수한 우정 편지였다.
또 친구들이랑 놀 때면 나랑 손잡고 싶어서 애들끼리 싸웠다고도 한다. (나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친구들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얘기해준 덕에 기억이 났다) 매주 새로운 친구들이 나를 집에 초대하느라 그 동네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의 집이란 집은 다 방문해보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그 당시 인기의 비결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대략 추정해보면 아무래도 독특한 외모를 가진 동양인 아이를 신기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단짝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었던 그때의 나는 내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직후부터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다가와주는 행운은 끝났고, 다른 방법으로 한국 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야 했다.
한국에 초등학교 고학년에 돌아온 나는 한국어를 당연히 잘하지 못했다. 그 당시 수업 내용을 80% 가까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한국어를 못했다.
당시 학원에서 소심한 성격으로 어울리지 못해 따돌림을 당했던 내가 깨달은 한국에서의 또 다른 중요한 생존전략은 바로 "눈치"였다.
사실 유럽에서는 아이들이 대체로 순진하고 지나치게 솔직해서 "눈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 학원에서 내가 눈치 없다고 괴롭힘을 당했던 계기는 학원 선생님이 숙제가 있었냐고 확인하시는 질문에 숙제를 전부 다 안해온 학생들 사이에서 나만 유일하게 해와서 선생님께 숙제가 있었다고 대답했던 것이었다.
그 외에도 영단어 시험을 볼 때 컨닝하는 문화를 알아채지 못해 내 답안지를 제대로 공유 안해줬다는 이유로 눈치 없다고 학원 선배들에게 혼이 났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터득한 생존 전략을 장착하여 중, 고등학교를 가서는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게 되었다.
먼저, 소심한 성격을 숨겼다. 말을 재미있게 할 자신이 없으면 친구들의 말을 경청해서 리액션이라도 크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감성은 굉장히 풍부했다. 여러 명을 신경 쓸 에너지가 없다면 차라리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성 친구 한 명에게만 내 눈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다른 친구들을 신경 쓰는 대신에 그 한 명의 표정과 어투를 살피고 둘이서만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하면서 그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셋째,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실 대인관계도 마케팅 전략에서 나오는 '포지셔닝'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본인의 장점과 경쟁력이 특수할수록 사람들이 친해지는 것이 이점이라고 생각할 경향이 높은 것 같다. 이는 향후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외모가 호감일수록 그 사람의 말과 행동들이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학생은 공부로, 사회인은 능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넷째, 인간적으로 부족한 면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사람이 완벽하면 재수 없어보인다(?). 공부를 잘하는데 허당이거나, 외모가 뛰어난데 털털하거나, 운동신경이 좋은데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 똥손이거나 등등 의외로 못하는 요소를 보여주면 사람들에게 오히려 호감을 사기 쉽다는 것이 내 경험이었다.
이러한 생존 전략(?)으로 그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겨서 이런 노력 없이도 진정으로 친해질 수 있는 평생의 친구들과도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많은 한계를 맞이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대인관계 스킬은 향상됐지만 나를 숨기고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 지치게 했다. 결국 나는 원래의 내 성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