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입시와 우울증
1. 우울증과 성격의 상관관계 (2)
지난 글에서는 학창시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내향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소위 '인싸'가 되기 위한 나만의 노력들을 공유했었다.
사실 선천적인 성격을 숨기면서까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대인관계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인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그 노력을 지속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답은 당연히 'no'인데 이처럼 간단한 해답을 나는 20살 성인이 되고서도 깨닫지 못했다. 관성적으로 '나의 사회적인 성격은 이래, 사람들에겐 나의 긍정적인 모습들만 보여줘야돼, 그렇지 못하면 분명 적응하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하며 어찌보면 정해진 고정관념에 나를 가두어놓은 것도 같다.
사실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으로 타고난 사람이라면, 외부 환경과 스트레스에 남들보다 예민할수밖에 없다. 내향인과 외향인의 주된 차이점은 도파민 수용체에 있는데, 내향인들은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가 외향인들보다 짧아서 도파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학설 중 하나로, 어떤 이들은 도파민 수용체 개수의 차이라고도 한다) 도파민에 민감한 내향인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피로해하는 반면, 도파민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외향인들은 외부 자극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오히려 자극이 없는 환경을 지루하다고 여겨 고통스러워한다.
내향적인 내가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외부 스트레스는 한국 입시 교육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 학교에 입학한 첫주에 바로 학교에서 '기말고사'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 '기말고사'라는 단어의 뜻도 몰랐던 내가 기말고사 시간이라 짝꿍이랑 책상을 띄우고 커다란 파란색 가림판을 아슬아슬하게 세워두고서, 빽빽하게 글자가 프린트된 회색 큰 종이를 받아 1번부터 25번까지 나열된 문제들을 풀 것을 강요받았다.
대부분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에게 찍을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용케 깨닫고 정직하게 국어 20점, 사회 45점, 과학 65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이 끝날 때마다 두자리 숫자에 불과한 '성적'이라는 것을 두고 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성적이 잘 나온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칭찬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래 친구들과의 대인관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성적과 인기는 비례한다는 나름의 법칙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공부와 성적에 대한 집착이 자라났다. 한국어를 못하고 성격도 내향적인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부가 살길이라고, 그 당시의 어린 나는 그렇게 느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정신을 갉아먹었는지, 일상생활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겨났다. 수업 때 선생님께서 하시는 설명들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혼자 곱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버릇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가듯이 뱉는 모든 말들을 그저 흘려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말들을 떠올리며 이를 속으로 두번 세번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곱씹던 말들 중 한단어라도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않으면 미친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놓쳐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물어볼 수 없는 수업 시간의 경우에는 혼자서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 놓친 문장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느라 40분 내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놓친 말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에는, '너가 바로 직전에 했던 말이 뭐였지?'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말뿐만 아니라 쓰고 읽는 것에도 그랬다. 지나가는 표지판도 한 글자 한 글자 놓칠새라 같은 문장을 처음부터 읽고 또 읽었다. 한 문장을 읽는 데에만 10분이 걸렸다.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손을 벌벌 떨며 내가 쓴 풀이 한줄을 검토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느라 시험 문제의 절반도 못 풀었던 적도 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힘들어질 때쯤 내 증상들에 대해 검색을 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가 '강박증'이길래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맞는 것 같다고 답해주셨었다.
그 당시 강박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제대로 알 리가 만무했기에 괴로움은 더욱 심해져 우울증 증상까지 보였었다. 같은 내용의 악몽을 매일같이 꾸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 생활을 그만두고, 그냥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자살 사고가 머리를 지배하듯이 매일 생각이 났었다. 하루는 학원 친구한테 "죽고 싶기도 해"라고 한번 말한 적이 있는데 같은 초등학생이었던 친구가 내 예상 외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했다. 그 이후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었다.
이처럼 초등학생 때도 공부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아 강박증을 보이던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3때 대입 스트레스로 본격적인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불안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리지 못할까봐 불안했었다면, 대입을 실패하게 되었을 때에는 나에 대한 모든 사회적 인정이 사라지고, 나의 가치가 바닥나는 줄만 알았었다.
그러한 불안감에 나는 나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공부에만 갈아넣기 시작했다.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야자를 한 후, 독서실에서 새벽 2시반까지 마저 공부를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씻고 잠들기 전까지 인강을 들었다. 2시간쯤 자고나면 새벽 5시반쯤 의식없이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 셔틀 버스에 타서 태블릿으로 영어 리스닝을 했다. (당시 공부에 집중하고자 고등학교 입학 후 바로 스마트폰을 2G 폰으로 바꿨었다) 학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허투루 쓰지않고 직전 수업 내용을 복습하거나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그런 노력과 함께 수시와 정시의 모든 전형을 준비했다. 어떤 전형을 준비해도 불안했으므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닥치고 했다. 교내외 활동, 대회란 것들은 다 참여했고 봉사활동도 꼬박꼬박 매주 2시간씩 하며 3년간 약 300시간을 생기부에 채워넣었다. 그렇게 나는 학생부 종합, 논술, 정시, 프랑스어 특기자 등 거의 모든 전형을 준비했다. 사실 전략적으로나 개인적인 에너지 효율 측면으로나,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불안감이 도를 넘어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과 정신이 모두 지친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입시가 끝났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본래대로 사람들의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나의 사회적 이미지를 보여줘야하는데 이미 마음이 너무 망가져있었다.
적당한 리액션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대학이라는 큰 사회에서는 타고난 외향적인 인싸들이 너무 많았다. 이야기를 듣고 반응만 하는데도 금새 기가 빨려서 집에 가고싶어졌다.
나와 친한 소수랑만 관계를 맺고 그들만 신경쓰고 눈치를 보기에는 대학에서 애초에 사람과 깊게 친해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모두 각자도생으로 본인 수업 듣기 바빴고, 각자 알바/과외에 동아리, 대외활동까지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여도 생활 반경이 제각기 너무 달랐다.
외모를 잘꾸미고 공부까지 잘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었다. 게다가 비슷한 학업 성취 수준으로 대학을 갈랐으니 성적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전공 교수님의 이쁨을 받아 대학원에 납치될 포부가 없는 한, 문과에서는 공부보다는 각자 진로에 맞는 스펙을 쌓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대학은 '익명성'의 공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하루에 8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놀고, 먹고, 공부했던 초중고와 달리 대학 동기들과는 별도로 시간 내서 모임을 갖더라도 같이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8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적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질 페르소나는 완벽할수록 좋았다. 인간성을 위해 부족한 점을 하나 보이기엔 그냥 부족한 사람으로 비춰질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10대때 내가 생각해낸 대인관계 전략들은 대학이라는 큰 사회로 나아가자 다 무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왜 내향적인 사람일까, 왜 남들처럼 사람들과 활발하게 어울리지 못할까, 왜 나는 이토록 에너지가 금방 소진될까, 왜 나는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려울까에 대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알아보고 자책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하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서 같은 고민을 하고, 또 하는 절망적인 회색빛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 한국 입시에 치인 채 바쁘게 살아왔어서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온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만큼 나는 누구고, 나의 성격은 어떻고,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에 관해 깊게 고민해보고 스스로의 가치관과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찰했던, 내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앓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를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