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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05. 2023

노후 준비로 효녀를 들였다

충동구매의  최고봉은 늘 아파트였다

올해 초, 2년 의무 거주기간을 채우기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고 2년 이후 나의 주거지를 위해 주택 매매를 계획했다.


성동구로 가려고 몇 개의 아파트를 찍어 여러 번 임장을 갔고, 중개사님의 "그래도 강남"기조에 혹해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얼마 전까지도 삼성동과 청담동의 여러 아파트를 보고 다녔다.


실은 그간 보고 다닌 강남의 아파트들은 영혼을 끌고 끌고 끌면 살 수야 있겠지만 토허제가 적용된 그 아파트에 입주해서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을 갚는 데 쓰는 삶이 어떨까에 대해 동생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다가 지금 사는 집에 대한 만족감이 살면 살수록 높아져서 돈은 돈대로 쓰면서 지금 사는 집보다 주거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삶의 질이 너무 곤두박질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 쪽으로 많이 기울기도 했다.

결국 동생과 나는 투자자 마인드는 부족한, 여전히 부린이다.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혹은 영원히-

투자가치, 미래가치를 생각한다면 역시 강남이지.

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다 동생이 제안을 해왔다.

우리가 자랐고, 엄마가 떠나기 싫어하는 양천구에 집을 사자. 내가 엄마와 그 집에서 살게. 지금 사는 집은 의무거주기간을 채운 후에도 세를 돌리지 말고 언니가 계속 사는 거야. 서로가 원하는 곳에서 살 테니 행복할 터이고, 이것이 바로 윈윈 아니겠어?!!


실은 동생에게 많이 의지하던 엄마였기 때문에 동생이 나와 함께 살게 되면서, 혼자 남겨지게 될 엄마의 생활이 많이 걱정됐었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결혼한 후 혼자 사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꽤 오랜 세월 엄마와 함께 살았고 이제는 정말 결혼이 아닌 "그냥 독립이 하고 싶어"라고 나오기에는 엄마가 눈에 밟히는 연세가 되었기에....

엄마가 계속 걱정이 되었고 앞으로는 그 걱정이 더욱 커질 것 같았다.



동생과 나는 그런 면에서 극성엄마 못지않은 극성딸이다. 엄마 혼자 하는 것이 뭐 든 불안하고, 엄마가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서 늘 전전긍긍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 스스로의 인생을 살라며 그 누구보다 독립적인 육아를 한 부모밑에서 자랐는데 우린 왜 이렇게 된 걸까;;;;우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극성맘이 아닌 극성딸, 헬기맘이 아닌 헬기딸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다시 본가로 들어가 엄마와 함께 살겠다는 동생의 제안은 고맙고 또 고마운 만큼 미안하기도 한 제안이었다. 동생 덕분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늙어 죽을 때까지 살집, 주택연금을 받으며 살 나의 집이 아니라 엄마와 동생이 함께 살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지금 엄마가 사는 집은 30년이 훌쩍 넘은 빌라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엄마에게는 매우 힘든 집이다. 수년 전부터 엄마 힘들 테니 엘베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해도 자식들에게 미안해서인지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던 엄마가, 이제는 너무 힘들다고 한지가 꽤 되었다.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고 톱니바퀴가 하나하나 맞아 들어가듯 모든 것이 딸깍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파트는 딱 하나 찍었다.

우리가 어릴 때 살다가 IMF때 살림이 기울면서 어느 날, 야반도주하듯 도망치듯 이사 나왔던 아파트.

급급급급매로 팔아버렸어야 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금의환향이 이런 것일까나 ㅎㅎㅎ

어차피 거주할 사람은 엄마와 동생이니 나는 전적으로 둘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

대신 내 돈의 투자가치는 포기할 수 없으니

-뷰는 무조건 좋아야 할 것.

-앞에 거치는 것이 없어야 함.


이 두 가지만 만족한다면 난 어디든 상관없었다.


엄마와 동생은, 올수리가 된 집을 원했다.

얼마 안 있으면 30년이 되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수리는 필수였고 올해 집 두 채의 인테리어를 하며 질리고 질려버린 우리는 또다시 그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나 빨리! 또!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3달 넘게 매물이 나올 때마다 보러 갔다.

모든 게 마음에 드는 집이 초반에 하나 나왔는데 네고를 하다가 놓쳤다.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접근했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맘에 쏙 들었던 집을 놓치고 나니 다른 집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이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여유 있게 보자며 서로를 독려했고 중개사님께도 그리 말씀드렸다.

우리는 늦어도 되니 마음에 드는 집을 구매하고 싶다고.


오늘.

만기가 내년 말인 전세 낀 집을 보는 줄 알고 집을 나섰다.

내년 말이면 자금을 준비하기에 여유도 있어 당장 입주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에게는 딱 맞는 집 같았다.

동도, 향도, 층도 모두 만족스러웠는데 막상 현장에 갔더니 그 집은 주인이 전세 만기 즈음에 매도하겠다고 해서 볼 수 없었고 다른 집을 보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향의 집이었는데 막상 들어가서 둘러보니 좋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어쩌다 보니 내손엔 아파트 계약서가 들려있다.

나에게 있어 아파트매수는 늘 충동구매이다.

무엇을 사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사는 내가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충동구매를 한 것이 집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큰 지름은 늘 얼떨떨해서 그런가 생각 없이 지르게 된다.

고민을 하기에는 단위가 너무 크다 보니 고민의 의지도 의미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 난... 크게 되긴 틀린 것 같다.


동생이랑 약속했다.

이번에 사는 집은 우리 노후준비의 마지막이고, 구매하고 나면 대출을 갚으며 남은 돈은 다 써보자고.

우리도 태어나 처음으로 사고 싶은 것은 망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저축하지 말고 다 써보자고.

그리고 대출을 다 갚으면 우리 꿈인 퇴사를 하자고.


우리는 오늘 노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효도도 하게 되었다.

효도는 돈이 최고지!

나는 오늘 돈으로 효녀를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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