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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뻥뷰와 향(向)에 대한 고찰

남향이 최고간디? 뻥뷰 찬양

by 밤비

엄마가 살고 계시는 집을 매매할 때 마지막까지 고민 됐던 것이 동향이라는 점이었다.

그 아파트 단지는 남향은 앞동뷰, 동향은 영구조망 하천 뻥뷰이다.

아주 오랫동안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 살았고 지상으로 올라온 후에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앞 빌라가 있는 곳에 살았던지라 늘 뷰와 빛에 목말라 있던 나였을지라도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남향우선주의를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다.


동향뻥뷰 집에 대해 검색을 수도 없이 했지만 동향집을 매매한 사람들은 본인의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혹은 꽤 많은 지분의 자기 보호본능을 담아 좋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고 동향에 살아봤다는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다 부정적인 의견뿐이었다.


지금 이 시점.

남향 뻥뷰에서 2년 동안 살고 있는 나.

동향 뻥뷰에서 1년을 살고 있는 식구들.

뻥뷰 집에 대한 여전한 찬양과 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한다.

뷰, 그거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볼일 없다.

라는 말은 내게는, 그리고 우리 식구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십수 년째 뷰 좋은 회사에 다니는 나는 아직도 그렇게 회사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감동스럽다. 회사를 그만두면 넓은 창으로 펼쳐지는 그림보다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이 가장 그립고 아쉬울 것 같다.


회사보다는 못하지만 정남형의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우리 집의 뷰가 2년 내내 사랑스럽고 감격스럽다. 집이 너무 좋아 여행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었다. 웬만한 호텔보다 더 좋은 나의 집.

하루 종일 밝고 따뜻하다.

25평 투룸 주상복합, 겨울 내내 월 가스비가 2만 원 전후로 나온다. 해가 따사롭게 들어오는 날이면 한겨울에도 집안의 온도가 24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해가 진 이후에도 22도 정도여서 난방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보일러는 실내온도가 22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만 30분쯤 가동하는 정도. 온수 사용을 위한 가스비만 내도 되는지라 겨울이 든든하다!


단, 여름에는 쪄 죽는…쿨럭

진짜 태양을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커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게으른 내가 커튼 여닫기를 귀찮아할 것 같아서..

아침의 햇살은 좀 가리고 싶어 블라인드를 누덕누덕 붙여놓았다 ㅎㅎ 남향집의 일출은 은근하고 뭉근하다

아직은 눈앞으로 펼쳐지는 뷰가 너무 좋아서, 내 인생의 고달픔을, 녹록지 않음을 참아내어 내가 받은 표창 같아서 오롯이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즐기고만 싶다.


더위를 덜 타는 편이라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남향집은, 한여름보다 한겨울에 해가 깊숙이 들어온다. 그 빛으로 인해 따스함이 느껴지는 겨울의 나날마다 왜 그렇게 조상님들이 남으로 창을 내겠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한여름만 제외하면 남향집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뻥뷰에 마주 보는 집이 없으니 내가 얻는 심리적인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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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동향집은 어떠한가.

주부 수십 년 차 엄마에게 물었다.

- 엄마, 동향집 습해? 추워? 곰팡이는?

엄마와 동생 모두 남향집보다는 못하지만 동향집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은 못 느꼈다고 한다. 물론 엄마가 부지런히 환기를 시킨다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리고 동향집에서는 식물이 시름시름 죽어간다는 것도 우리 집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키우기 시작한 반려식물들은 화분 좁은 줄 모르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아침이 지나면 집의 깊숙이까지 햇빛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앞에 거치는 것이 없으니 집이 밝아 별도의 조명을 켜고 생활할 일이 없다는 것이 엄마와 동생의 중론.

엄마네집의 일출. 동향이라 매일매일이 일출 맛집!

- 엄마, 그래도 역시 남향이 좋았을까?

- 아니, 엄마 이제 앞집 보이면 답답해서 못살아. 하루 종일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되나 싶어


오랫동안 빛 안드는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언젠가는 엄마도 해뜨는 집에 살게해주겠다고 다짐했는데, 우리 엄마는 진짜 매일 일출을 즐길 수 있는 동향 뻥뷰, 해뜨는 집에 살게 되었다.

https://brunch.co.kr/@deer-bambi/2


나의 집은 완벽한 시티뷰이지만 엄마집은 하천뷰인지라 4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하루하루가 훌륭한 명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물론 나의 집처럼 남향 뻥뷰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뻥뷰와 향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 식구는 다 뻥뷰에 한표다. 이런 선택은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니 다른 이들과는 당연히 다른 생각일 수 있음은 충분히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북향 뻥뷰는 어떻겠냐고?

웬만하면 북향집을 만들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북향집을 만들었다면 뷰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청담자이랄까.. 청담자이랄까 ㅎㅎㅎㅎ)

아직 그런 선택지를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니 그때의 선택은 닥치면 고민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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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멍하니 창밖만 보고있어도 호강한다는 생각이 드는 삶은 생각보다 쉽게 위로받는 삶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흘러가는 구름에서, 스쳐가는 계절에서도 위로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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