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지하 둥지와 43층 사상누각

사상누각도 둥지가 될 수 있을까

by 고니

* 사진 출처 : 성남시청 인스타그램('22.08.23) SNS 시민기자 임동흥


내가 자란 둥지는 성남시 어느 빌라의 반지하 투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둥지에서, 흙 속에서 싹 틔울 씨앗처럼 자랐다. 지금 생각해도 가팔랐던 언덕을 한참 올라가면 골목에 빌라들이 줄 서 있었고, 우리 집은 3번째 집이었다. 해가 간헐적으로 드는 우리 빌라는 입구에만 서있어도 서늘했다. 어릴 땐 그저 집에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기였는데, 이제야 엄마의 곰팡이 걱정이 와닿는다.

빌라 입구에서 계단을 4칸 정도 내려가면 우리 집과 옆집 문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계단 옆 공간에는 옆집과 우리 집의 잡동사니들, 겨울에는 귤 같은 걸 두고 먹기도 했었다.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현관 바로 앞에 화장실 문이 있고 옆으로는 부엌이 있었다. 부엌을 중심으로 왼쪽은 안방, 오른쪽은 작은방. 단순한 구조의 반지하가 내 둥지였다.


방이 따로 없었으니 나랑 남동생은 거의 초, 중학교 내내 방을 같이 썼다. 우리 방에는 창문 쪽으로 책상이 하나 붙어있었는데, 그 창문으로는 땅과 옆 빌라의 벽이 보였다. 빌라와 빌라 사이 고양이가 오가고 가끔 쓰레기가 날아와 있는 공간이 우리 방 창문의 뷰였다. 이렇게 말하면 사는 동안 한 번도 열지 않고 살았을 것 같은데, 때때로 열고 지냈는지 창문을 막은 방범창과 맞은편 빌라의 색, 놓여있던 아이스크림 껍데기가 그림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초등학생 때는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 대신 하교하면 책상 의자에 앉아, 집에서 미싱을 돌리는 엄마를 보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기 바빴다. 보통은 엄마가 공장에 나가서 일을 했지만 어떤 기간에는 집에서 원단을 쌓아놓고 일했고 나는 그 원단 냄새와 미싱 돌아가는 소리, 엄마의 존재가 우리 방을 채우는 것이 행복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없을 때면 안방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안방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안방 창문도 절반가량은 땅이 가리고 있었지만, 안방 창문 앞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들면 대각선 위인 하늘과 맞은편 공원의 나무 꼭대기들이 보였다. 가을바람, 봄바람을 맞으며 낡은 컴퓨터로 노래를 듣고 있자면 가사를 이해하기엔 한참 어린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곤 했다.


추억 보정인지 나에게 반지하 집은 아늑한 둥지였고, 좋은 기억들이 대부분이었다. 안방에 들던 볕, 작은방에서 엄마가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깨던 아침, 겨울에 누가 나가서 귤을 가지고 올 건지 겨루던 동생과의 시간까지. 지금 대출로 쌓아놓은 나의 집에는 없는 것 같은 안락함과 포근함이 넘쳤으니... 시간이 많이 지나도 나에게 과거의 집은 둥지이고 지금의 집은 사상누각일 것 같다.


이제는 나도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반지하 우리 집이 아니라, 거기에서 자라면서 받은 보호와 보살핌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들에게는 때때로 장소가 병원이었는지, 장례식장이었는지 보다 엄마, 아빠와 보낸 즐거운 기억만이 전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었을 엄마, 아빠의 마음은 달랐을 것이다.

습해서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집. 창문을 열어놓자니 몇몇 사람과의 눈 맞춤이 께름칙한 창문과 어쩌다가 한 번은 취객이 오줌을 싸고 가는 일도 벌어지는 집. 빌라 사이 고양이들의 싸움 소리가 시끄럽고 아이만 집에 두기에는 안전이 걱정스럽기도 한 집. 아이들은 크고 짐은 느는데, 방 하나를 나눠 써야 하는 남매들은 잠드는 시간으로 싸우기도 하는 집. 한숨이 나와도 대출을 껴서라도 살아야 했던 작은 집을 우리 엄마, 아빠는 모래를 파서 만든 굴처럼 느끼셨을 수도 있다.


내가 그 땅굴을 둥지처럼 느꼈듯 우리 아이도 우리의 사상누각을 아늑한 둥지처럼 여길 수 있을까. 나에게 가난은 곰팡이, 먼지 냄새로도 코끝에 익숙했지만, 그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부모님과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마냥 둥지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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