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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fie Jan 03. 2018

행복하게 일하고 즐겁게 살기

6. 시작의 힒듬  2부 프롤로그

썩 유쾌하지 않았던 퇴사이후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지금 '2부'라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내 자신이 무언가를 '시작'할 수있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정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전업주부'를 하겠다라는 결심으로 시작된 일과가 아니기에

워킹맘에서 '워킹'을 빼고난 '맘'의 생활은 다시 '워킹'을 찾기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의 시간과 앞자리의 '집안일에 조금 소홀해도 별수 없잖아, 일을 해야하니'라는 양해의 단어를 잃어버린 어중간한 '주부'의 생활이 얽혀 절반의 불편함과 위치상의 불리함이 작용했다.


첫 달은 참 좋았다. 통장 잔고도 넉넉했고 그간 마음고생을 '위로'하고 아이와 '원없이 놀자'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도 했으니까.  이와 함께 '현역'의 향내가 아직 가시기 전이었으니 몇 개의 면접제의도 있었고 곧이어 바로 입사가 결정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회사들도 존재했다.  돈 걱정은 우선 잠시 넣어두고 약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왔고, 또 겸사겸사 남편의 해외출장도 있어 아이와 생활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아이의 소중한 순간들을 더 많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둘째 달, 엄마가 집에서 쉬고 있으므로, 선생님들이 부족한 채로 진행되는 방학때의 '당번제 돌봄'보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게 더 나을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아이의 어린이집 여름방학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일주일간의 방학, 공교롭게도 남편의 일이 몰렸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고스란히 내 차지로 떨어졌다. 바캉스 시즌- 날은 더웠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한여름의 뙤약볕-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이렇게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언제 오려나 싶어, 방학기간 내내 물놀이장으로, 키즈카페로 열심히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간을 뜻하지 않게 강행군을 했던 아이는 감기가 겹치고 겹쳐 폐렴직전까지 갈 정도로 건강이 일시적으로 나빠졌다. 어느 누구도 누구때문에 아프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아이와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시적 전업주부+예비 워킹맘에게로 아주 자연스럽게 심정적인 비난의 화살이 고스란히 날아와 박혔다. '너무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아이 아빠와 아이 외할머니에게서 동시에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종일반에서 맞춤형 시간제로 옮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직장을 구하는 준비를 할 경우 3개월의 예외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통보를 받았고 그 한계기간은 바로 10월 까지였다.


셋째 달, 일하던 때의 기억이 점점 사라져갔다. 마음 한 켠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자의반 타의반 직장을 그만둔 채 영원히 복귀하지 못했다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그러던 차, 생각치 못했던  새로운 제의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새로운 변수들로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나 자신의 'Role 과 Positioning'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봤다. 스타트업 업무를 종료하고 나왔을 때에는 무조건 '크고'  ' 시스템이 있고' '  일이 적은'  '인하우스'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퇴사 석달째가 되니, 앞선 회사의 짧은 몸담음이 날카로운 칼이되어 내 앞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조급함과 걱정, 그리고 추락하는 자신감을 안고, 몇 십년만에 한 번 온다던 아주 길고 긴 추석 연휴를 맞이했다.


넷째 달, 통장의 잔고가 간당간당해졌다. 아이의 어린이집 돌봄이 종일에서 맞춤으로 바뀌는 분수령이 되는 마지막 달이기도 했다. 직장인이었다면 세상에서 제일 달콤했을 것 같던 10일의 연휴는 그 전부터 쭉~ 쉬워왔던 사람에게는 반갑지 않은 날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모든 회사는 연휴 이후로 구인을 미뤄둔 것 같이 뭔가 어둡고 음습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젠 '크고 ' 일이 적고' '시스템이 있고' 보다 내가 '그 곳에서 뭘 할 수 있는가'로 포커스가 옮겨졌다.

또한 그간의 경험치로 안일하게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해드헌터를 만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쳤고, 프로필 사진을 제대로 찍었다. 부족했던 영어공부와 영어 인터뷰 공부를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가 어느 포지션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프레임을 짰다. 작은 회사를 거치고 포지션이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 나는 매출 혹은 어느 그룹을 책임져야 하는 조금은 무거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차피 무언가를 시작하더라도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어야 했고,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 만만치 않게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워라벨 보다 더 높은 나 자신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것이 필요했다.


10월  18일, 적극적으로 입사를 희망하는 한 회사를 만났고

11월   1일, 가까스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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