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318. 고팠다.

by Defie

일요일을 숙취로 날려버린 후

못한 공부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시간도 '공부에 매진하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빵만 한개 먹은채

카페에서 밀린 인강 하나를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조금 뿌듯했는데,

오후 3시경이 되자마자, 허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편의점 컵라면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점심시간을 내 마음대로 써버렸는데, 뭔가를 먹고 오긴 좀 그렇네...

서랍 속 키세스 초콜렛 두 알로는 20여분밖에 허기가 연장되지 않아

그리 멀지 않던, 전에 눈여겨봤던 떡집을 떠올리고선 떡을 몇개 사왔다.

2+1이라고..써있어서 3팩이나 사온건 안비밀..--;

엄마가 떡을 좋아하시니까 겸사겸사 사다드리자 라고 생각~


라면과 떡, 그리고 맥주

이렇다할 다이어트는 하지 않지만

칼로리 대비 포만감에서 다이어트의 최대의 적인 두 아이들...

허기진 그 와중에도 '떡 칼로리가 얼마였지...? 좀 참고 집에가서 밥을 먹자'는 생각으로

떡 두 알만 입에 털어넣고 퇴근시간까지 버텼다.


퇴근! 회사에서 집까지는 1시간 20여분 남짓

엄마가 장어를 구워두신다고 했으니 밥이랑 같이 먹자...

머릿속에서 밥과 장어가 끊임없이 춤을쳤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그날 따라 귀갓길 차가 막히기 시작-

집에 도착한 시각은 무려 밤 8시 50분...

사는게 다 그런거지, 일찍 나온 날은 차도 안막히고 더 빨리 도착하고

늦게 나와서 발 동동구르는 날은 버스도 안오고 구두굽도 빠지고 그런거지..

세상이 다 저주스러웠다.


집에 오자마자

대충 씻고 허기진 뱃속으로 밥을 넣었다.

다이어트고 칼로리고 뭐고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배가 고팠다.


그렇게 십 여 분 후

조금 배를 채우고 나자,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오고, 눈 앞의 모든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주고,

남편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

.

.


별다를 것 없는 작은 헤프닝이었지만

먹고사니즘, 그 가장 앞에 있는 '허기짐을 해결한다'는 생존이라는 큰 문제 앞에서

지식이고 이성이고 체면따위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간 배를 곯고 살아온 적이 없던 내가 이럴진데

정말 가난하게 사는 누군가들은 과연 어떤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무언가 '사고 싶은걸' 참는 것 쯤을 '절약'과 '절제'라고 믿어온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그리고 점심엔 밥은 뭐든 먹고난 후에 공부를 하자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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