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기운(한기)

032. 시원한 맥주의 맛

by Defie

30분에 단 한대가 오는 버스시간이 왜 또 꼬였는지 아침부터 뭘 타야 할지 잔머리 굴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지난번 잃어버린 퍼 목도리 대용으로 목에 대충 두른 목도리도 정처 없이 풀리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목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몸을 몇 번이나 감싼 건지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고 자리에 앉은 사무실에서 연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을 들이켰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점심으로 낙지 갈비탕을 먹으면서 연신 오장육부를 데웠으나 내장기관이 동상에 걸린 듯 몸속의 한기는 말끔하게 가시지 않았다.


추운 것보다 더운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아이를 낳고 4개월쯤이던가 실수로 켜진 에어컨 바람 5초에도 덜컥 감기가 걸렸었으니까-


그 이후로 차가운 것은 전보다 즐기지 않게 되었는데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면, 맥주! 술이 줄었기도 했고,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잘도 자랐던 아이 덕에 배가 부르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적어진 탓도 있다. (출산 후 체중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안타깝게도 아랫배에는 무언가 공간이 생겼다 -0-)

결정적인 계기는! 김치냉장고에 한 이틀 정도 재워둔 맥주에서는 뭔가 꿍한 일상을 뚫어주는 상쾌함이 들어있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다. 한 모금을 입에 넣는 순간 목구멍부터 아랫배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랄까? 안주는 방울토마토에 치즈 몇조각이면 OK!


이런 평화로운 맥주 라이프가 위태로워진건, 바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맞이한 겨울, 최근 몇개월 전이다. 예전 살던 집 보다 많이 커진 집, 그만큼 낮아진 실내온도가 날 취약하게 만든 것인지 작년에 한 번도 안 걸렸던 겨울 감기를 주야장천 앓고 있다. 여기에 다 나았나~싶어 맥주라도 한 캔 하면 다시 감기 모드로 돌아간다.

이제 금주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긴 최근에 나를 스스로 괴롭혔던 술자리 이후의 현타를 생각하면 그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만 '저 술 못 먹어요'라고 말하면 약속을 미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은 친구들도 몇몇 없는데.. 더군다나 이깟 감기에 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

고민의 결론은 이거다.


조금 더 건강한 몸을 만들어서 겨울에라도 퇴근 후 맥주 한 캔쯤은 벌컥벌컥 들이키는 어른으로 남아야지.

일단 출근길 사무실로 향하는 6층정도는 계단으로 가볼까?


매거진의 이전글게으른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