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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규현 Jan 26. 2019

2년 전 "미안해",
그 위로가 고마워.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한 내가 너무 못났어

아내의 꿈 찾아주고 백수 되고픈 남편의 기획 노트입니다. 아꼼은 아내의 애칭입니다.


시공에 필요한 자금 대출은 아꼼이 알아보기로 하였다. 2주가 지났음에도 대출 관련한 대화가 없었다. 답답했던 내가 물었다. 은행 한 곳을 다녀왔는데 가벼운 상담만 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출받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아 와도 준비가 부족한데, 한 곳만 가볍게 다녀왔다는 말에 나는 당황하고 조금 짜증도 났다. 아주 조금..


여러 곳에 가서 상담해봐!


다른 은행에 더 가보라고 압박했다. 지금 생각하면, 압박한 내가 참 못난 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게 말하고 기다리는 동안 계약하려 했던 건축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봄 공사가 계약이 모두 완료되어, 설계 계약을 할 수 없단다. 나는 아꼼에게 짜증을 냈다. 우리의 예산계획이 뚜렷해야 설계를 들어갈 수 있기에 대출을 알아보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했고, 그만큼 서둘러야 하는 일이었다며 반복해서 말했다. 땅 명의가 아꼼이니깐 당연히 아꼼이 알아봐야 하는 걸로 생각했었다. 


오빠 미안해. 자신이 없었어.


아꼼이 내게 말했다. 본인이 회사를 다니는 중이 아니라서, 가정주부라서.. 은행 창구에서 대출 상담받을 때 자신감이 없었다는 말.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짜증을 냈다. 그날 퇴근길, 2년 전 대출받던 날을 생각했다. 은행에서 대출 신청을 하기 위해 1시간 30분을 기다리며, 번호가 적힌 대기표만 만지작거렸던 날. 그날 아꼼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은행에서 기다린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 10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려야 하는 내가 너무 안쓰럽더라.


내 말을 들은 아꼼은 "오빠 미안해"로 말을 시작했다. 딱히 그녀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나는 그때 미안해라는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위로받고 싶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그랬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짜증을 냈던 나는 찌질이 못난 놈!!!


같은 경험을 했던 나는 위로받고 싶어 표현을 했지만, 그녀는 달랐다. 딱히 나에게 미안해할 일도 아니었다. 내가 2년 전 느꼈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라고 했다. 2년 전과 입장만 바뀌었다고 생각해보니. 내가 "미안해"라고 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시간 내서 은행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던 경험을 똑같이 경험하게 만들어 버렸다. 다시 한번 나는 못난 놈!!


정말 바보 같다. 2년 전 아꼼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미안해"라고 말해주는 게 가장 큰 위로이면서 가장 큰 힘이 된다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2년 전 그렇게 말해준 게 너무 고맙다. 덕분에 오늘도 이렇게 성장해 가는 것 같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늘 "미안해"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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