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oss, Last and Alike

로봇드림(2023)

by 명태

다들 한두 번쯤은 사물에 이름을 붙여본 적이 있지 않을까?


요즘 청소요정, 세바스찬, 도비… 사람들이 로봇 청소기에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sns나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온다. 김뽀삐, 최나나처럼 반려동물도 성씨를 붙여 사람 이름처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군인들이 전투 로봇에게 감정적인 애착을 갖는 현상이 있어, 로봇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동료처럼 느끼게 된다는 실험자료 마저 있다.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에게 애착을 느낀다. 이름을 붙이고 인격이 있는 양 감정을 투사한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것을 사랑한다. 우리는 대상에 '생명'을 투사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무한을 꿈꾸듯 그것들과의 관계도 무한하기를 꿈꾼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사람과 이별이 그렇듯 비인간개체와의 이별 또한 상실을 남긴다.


영화 <로봇 드림>의 주인공들은 사람보다 더 우리의 애착을 불러온다. '개'와 '로봇'은 현대인이 외로울 때 가장 많이 찾는 대상이니까. 하지만 이 또한 영원하지 않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근데 이별이 정말 끝인가. 이별 후 우리는 오히려 서로 더 닮는다. 상대의 조각을 영원히 간직한 채로.


2jpeZpjWbSJ82qZKV3SS9D.jpg
V23robotdreams07.jpg


주인공 '도그'는 홀로 살면서 외로움을 느끼다 TV 광고를 보고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3.-Robot-Dreams.jpg
dog-and-robot-submerged-in-the-ocean-wearing-goggles-in-robot-dreams.jpg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반짝이는 여름휴가 같다. 해변에서 뛰놀고, 음악을 듣고, 함께 웃으며 춤추는 모습들은 보는 관객들도 미소 짓게 한다. (나중에 이때 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조건반사처럼 울면서 웃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Dog_fails_to_help_Robot.jpg
p-robotdreams6.jpg


바닷물에 녹슬어 움직일 수 없게 된 무거운 로봇과 해수욕장의 폐장. 꼭 데리러 온다는 도그의 약속은 로봇에게 닿지 못하고, 로봇은 모래사장에 누워 계속 도그와 재회하는 꿈을 꾼다. Robot dreams. 로봇이 꾸는 재회의 꿈은 영화의 제목이 된다.


GJIS3CiX0AAov6c.jpg
robot-dreams_cinelapsus.png


그렇게 이별한 채로 가을, 겨울이 지나간다. 방치된 로봇의 몸은 점점 더 망가져가고 도그는 다시 외로움에 시달린다. 망가진 몸과 다르게 로봇의 꿈은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친다. 도그는 다른 이들과 교류하려고 하면서도 계속 로봇을 연상하거나 추억을 떠올린다. 이별 후에도 소중한 기억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둘은 점차 현실을 받아들인다. 도그와 로봇은 각자 다른 이들을 만나며 다른 형태의 삶으로 나아간다.


hq720.jpg
maxresdefault.jpg


그렇게 영영 만나지 않나 싶던 것도 잠시, 추억이 함께 했던 노래에 둘이 같이 마주 보지 못한 채 춤춘다. 이 찰나의 재회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서로가 각 삶의 일부분이 됐음에, 그 기억이 나와 함께함에, 감사하고 이제는 떠난 상대를 축복하는 재회이다.


노래가 끝나고 여전히 둘은 마주하지 않은 채 '아 그때 진짜 행복했지, 잘 지내려나' 하며 헤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각자 계속된다. 떠나보낸 관계들은 무의미하지 않다.


대사 한마디 없는 영화에 주인공이 '개'와 '로봇'인 점은 우리를 감정의 가장 깊은 코어에 데려다 놓는 듯하다. 마치 김리윤 시인의 <생물성>이라는 시처럼.


생물성

인간은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애정을 느낀대

비행기에서 본 도시는 강과 바다가, 광장과 공원이 서로를 지나치게 닮아 있었어
늙거나 젊은 사람 여자이거나 남자인 사람 개와 고양이가 모두 같은 점으로 요약되고

볼 때마다 신기해, 여기서 보면 모든 게 가짜 같아
비행기 창문으로 본 풍경을 실감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너는 창문에 이마를 꼭 붙인 채로 말하지

집에서 기다리는 친구가 있어 그 애는 유난히 눈이 예뻐
그 애의 구슬처럼 투명한 눈동자를 사랑해

현관문을 열면 반가운 눈치를 보내는 그 애는 다른 어떤 개나 고양이와도
아니면 새나 도마뱀과도 도무지 닮은 데가 없고
마주 본 두 눈은 살아서 슬퍼하고 살아서 기뻐하고 아침이면 눈곱을 떼어줘야 할 것 같았는데

어제는 조류관에서 아주 많은 새를 봤어
조그맣고 단단한 부리 위의 두 눈은 유리구슬 같았지
새의 마음 대신 내 얼굴만 비치는 투명한 표면이 무서웠어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에게 의도와 삶을 투영하게끔 생물학적으로 타고났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가진 로봇 청소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사랑하는 것들은 유독 살아 있는 것 같고
우리는 살아 있는 것 중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네
둘 중 무엇이 먼저 벌어지는 일일까

어느 날 아빠는 돌 하나를 데리고 집에 오셨어
매일 해가 좋은 오후에 물을 흠뻑 먹여야 한다고 돌은 물과 햇빛을 매우 좋아한다고
기쁨으로 반들거리는 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냐고

냄새로 친구와 적을 구분하고 냄새로 사랑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오직 네 가지 색만을 구분할 수 있는 얼굴에도
유일하게 두 개인 건 왜 눈이겠니

말랑한 촉감과 물컹해지는 마음 사이에서
물러터져가는 시간에

아무리 봐도 움직이지 않는 돌 위로
오후의 햇빛이 돌의 능선을 돌아 걸으며 빛나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중에 이것들도 감정을 갖게 될까? 그리고 갖게 되면 인간처럼 존재의 이유를 물으며 외로워할까? 아니면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생명을 투사할까?


<로봇드림>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개이고 꿈꾸는 주체는 로봇이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인간의 깊은 감정에 가깝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닮아갔던 모습으로 지속되는. 이별은 끝이 아니고 상대가 남긴 부분을 내 것으로 남겨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를 떠나갔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나의 일부로 지속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발견한다.


로봇 청소기에 이름 붙이기나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부르기. 우리가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런 애착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기에 기억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의 감정도 오롯하게 끌어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Do you remember?

https://youtu.be/L0tzeqgivNg?si=GzG4vLQFygKIZvO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