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탑 메이킹 센스(1984)
공연 실황 한 편이 인생을 담고 있다고 말하면 이상할까?
조나단 드미가 1983년 토킹 헤즈의 콘서트를 담은 영화인 <스탑 메이킹 센스>. 노래와 더불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보면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 찬 삶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탑 메이킹 센스>라는 영화의 본질은 존재 자체가 무대이고, 그 무대가 곧 하나의 완전한 서사 같다. 단순한 콘서트 실황이 아니다. 토킹헤즈의 음악을 넘어, 인간이 발산하고 같이 공명하는 에너지 자체가 서사이다.
휑한 스테이지 위, 한 남자가 기타를 맨 채 카세트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선다. 그는 토킹헤즈의 싱어. 첫 곡 "Psycho Killer"를 홀로 부르며 무대가 시작된다.
이후 점차 연주자들과 악기, 코러스들이 합류한다. 싱어, 베이스, 드럼, 퍼커션, 신시사이저, 코러스 등등. 점진적으로 레이어들이 더해진다. 휑한 무대는 열정 가득한 연주와 노래, 춤으로 꽉 채워진다.
그들이 함께 흥겨워 추는 춤은 힘이 넘쳐 흐른다. 앉아 있던 객석들도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콘서트 장을 만끽한다. 중간중간 클로즈업되는 연주자들의 얼굴은 장난기가 넘친다.
노래의 순서는 그 자체로 서사가 넘쳐난다.
"Psycho Killer"에 이어 베이시스트가 합류한 "Heaven", 드러머가 등장한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쭉 이어지는 노래의 가사들은 굉장히 시적이다.
각각 다른 노래의 가사이지만 이어 붙이면 이미 영화를 연출한 의도와 서사가 들린다.
"난 살아있는 전선이야."
"늘 그랬듯이 날들이 지나가네! 일생에 단 한 번"
"상식의 틀을 깨"
공연이 곧 서사인 이 영화는 이장욱 시인의 시 <극적인 삶> 같다.
극적인 삶
막이 내려올 때는 조용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후의 해변이나
노인의 뒷모습 또는
혼자 깨어난 새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말의 눈을 찌르는 소년이었다.
요한의 목을 원하는 살로메였고
숲을 헤매는 빨치산이었다.
세일즈맨이 되어 핀 조명이 떨어지는 무대에서
독백을
여러분, 인생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코가 큰 시라노는 여전히 편지를 쓰고
빨간 모자를 쓴 늑대는 밤마다 문을 두드리고
맥베스는 예언에 따라 죽어가는 것
추억에 잠겨 혁명을 회고하는 자들은
이미 혁명의 적이 된 자들이지.
겨울 다음에는 가을이 오고 가을 다음에는
영구 미제 살인 사건이 시작된다.
우리는 결국 바냐 아저씨처럼 쓸쓸할 거예요.
고도를 기다리며 영원히
벌판을 떠돌겠지요.
자책하는 햄릿과 함께
드라마틱한 삶이란 장장 일곱 시간짜리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인데
카라마조프는 검은 피와 더럽혀진 자들이라는 뜻인데
인형의 집에서는 드디어 노라가 뛰쳐나오고
에쿠우스의 주인공은 자신의 눈을 찌르며 외친다.
머리가 열 개인 말들이여, 눈이 백 개인 말들이여, 반인반마의 신들이여!
붉은 막이 등 뒤로 내려오자
나는 배꼽에 두 손을 모으고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객석의 어둠 속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쓴 살인자가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인생을 한 편의 무대로 표현하는 이 시는 더 없이 극적인 삶 자체다.
<극적인 삶>에서의 공연은 연극이지만, 콘서트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모든 퍼포먼스도 결국 연극과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각기 다른 극의 인물들이 뛰어나와 합류하는 부분은 <스탑 메이킹 센스>의 무대처럼 보인다. 막이 내릴 때까지 무대를 서사나 사운드가 가득 메운다. 무대와 달리 인생은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 <스탑 메이킹 센스>의 공연도 기승전결은 있으나 조금 더 '인생' 같다. 엔딩멘트와 열렬한 박수갈채까지, 열정의 춤을 출뿐이다.
우리의 삶이 어떤 장르의 무대든, 우리는 마지막에 우렁찬 박수 소리를 받기를 원한다. 관객석에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살인자(저승사자·죽음)의 우리를 기다릴지언정. 그런 의미에서 <스탑 메이킹 센스>의 공연은 <극적인 삶>의 불멸적 버전이다. 공연은 필연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에너지와 파장은 영원하다.
이 공연 실황이 영화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처음엔 텅 빈 무대에서 시작해 곡이 진행될수록 악기와 연주자가 하나씩 추가되는 연출은 내게 인생의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같이 보인다. 인생을 무대라고 한다면 여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 각 악기 음의 조화로움과 풍성함, 코러스의 화음, 연주자들의 춤과 열정. 인생에도 이런 조화와 풍성함, 열정이 필요하니까.
"인간다움을 받아들이는 것"
토킹헤즈의 심플하고 심도있는 메시지처럼, 이 영화는 존재의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 보인다. 우리의 우리다움을 받아들이고 서로 같이 무대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것 말이다.
<스탑 메이킹 센스>가 1984년과 2025년의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콘서트의 '살아있음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콘서트가 촬영된 영상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생명 그 자체의 에너지와 서사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펄떡펄떡 뛴다.
"Stop making sense, 상식의 틀을 깨."
이 가사는 삶이라는 단 한 번뿐인 제전에서 언제나 유효하다. 남의 상식 아래서만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나의 상식 자체가 되는 것. 그것이 예술이자 풍성한 인생의 마법 주문이다.
고로 나도 이 영화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에너지처럼 춤을 추고 싶다. 나도 살아있는 전선처럼 펄떡일 것이다. 그리고 왜 춤을 추냐 묻는다면 "Stop making sense!"라 답하리라. 그럼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이라면 토킹헤즈처럼 묻고 싶다.
"누구 질문 있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