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유어 아이즈(2023)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떤 예술을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예술이 세상을 바꿀 힘이 충분히 있을 거라 으레 믿는다. 이에 대한 질의응답이 여러 예술가와의 대담에서 나오고, 예술에 대한 자리에서도 항상 토론 거리가 된다.
이에 대한 결론은 영원히 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믿음' 자체 말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가? 예술로 세상과 사람을 움직여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31년의 휴지기 이후 만든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영화의 힘을 믿는 인물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보다 보면 형언할 수 없는, 잔잔한 힘이 느껴진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했으나 현재는 은퇴한 채 살아가던 '미겔'은 어느 날 TV 탐사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는다. 20년 전 미겔이 연출한 영화 <작별의 눈빛> 촬영 당시 홀연히 사라진 배우 '훌리오 아레나스'의 실종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훌리오는 주연 배우일 뿐 아니라 미겔의 절친한 친구였다.
훌리오는 당시 영화 촬영 마지막 날 세트장에서 갑자기 사라졌고, 그 후 20년간 행방불명 상태였다. 당연히 영화도 그렇게 미완으로 남게 됐고, 미겔은 영화를 관두게 되었다.
미겔은 결국 기억을 더듬으며 과거를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보관된 영화 필름과 더불어 과거의 조각들을 마주하면서. 실종된 친구를 찾는 여정은 미겔 자신이 잃은 자신의 과거를 찾는 여정이 된다.
"예전엔 아빠가 살아있는 꿈을 꿨어요. 그럼 애써 잊어요. 가끔 아빠 영화가 나와요. 영화는 그래서 참 이상해요, 그 안의 인물이 아빠인 거잖아요."
미겔은 훌리오의 딸, '아나'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뒤로 했던 과거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방송이 방영되고 한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훌리오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다.
훌리오를 찾아 떠난 미겔. 훌리오는 이미 기억을 완전히 잃은 지 오래였다. 자기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 늙은 훌리오는 요양원에서 잡역꾼으로 일하며 가르델로 불린다.
"기억도 물론 아주 중요하지만, 사람은 단순한 기억 그 이상이에요. 감성을 건드리면 영혼을 깨울 수도 있을 거예요"
의사는 훌리오가 뇌에 문제가 있어 기억 상실이 있다고 설명한다. 훌리오의 소지품을 살펴보던 미겔은 그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줄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어쩌면 마지막 영화로 그의 기억을 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과연 한 편의 영화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훌리오를 불러올 수 있을까?
막스는 기적이라도 믿느냐며 미겔을 다그치지만 그럼에도 폐업한 영화관까지 필름을 들고 먼 길을 온다.
오래되어 낡은 극장 안. 요양원 관계자와 수녀 둘, 프로그램 기획자. 그리고 아나와 훌리오. 훌리오와 미겔의 마지막 촬영인 미완성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샷. 극장 안의 훌리오와 영화 속의 훌리오가 마주 본다. 그리고 암전과 함께 훌리오는 눈을 감는다.
영화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매개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주민현 시인의 시 <오래된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듯하다.
오래된 영화
깊이 잠들었다 눈뜬 아침에
내 인생이 오래된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오래된 것은 그저 오래된 것
한옥 마을 앞에서 '얼마든지, 얼마든지'
약속하는 두 사람 같은 것
레트로풍의 활짝
벌어지는 주름치마를 입고
인간의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볼 때
활짝 펼쳐진 입체 그림책같이
울록볼록 솟아나는 사람과 풍경들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
어느 날 우리 집 초인종이 울린다면
시킨 적 없는 택배가 우르르 도착한다면
죽은 택배 기사와 언 손을 문지르며
쿠키를 쪼개 나누어 먹는 고요한 시간에 대하여
아코디언 연주자가 처음부터 다시
연주를 반복하는 것
트럼프 카드를 쥔 마술사가
여러 종류의 카드를 펼쳐두는 것
긴 기억의 회랑을 건너
문지방을 밟고 나의 방을 바라보면
녹색 담요를 두른 작은 개와
어둠에 휩싸인 책들
문지방을 밟고 반대편을 바라보면
할머니가 된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무엇을 먹고 무슨 꿈을 꾸는지
어떤 일과로 하루가
굴러가는지
그 방에는 아직 녹색 담요가 남아 있는지
작은 개가 내 손을 건드릴 때
내 인생이 오래된 레코드처럼
튀었다 흐르기 시작해
활짝 벌어진 주름치마는
무언가 말하려 살짝 벌어진 입술같이
'오래된 영화' 같은 삶은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인물들의 삶 같다. 평범하고 어쩌면 시시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들에게 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하다.
필름 속 카메라를 정면 응시하는 훌리오와 그것을 마주보는 현재의 훌리오. 이 장면은 어쩐지 '할머니가 된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가 같이 있는 것. 그것은 눈을 감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 곳.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 공존할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중첩된 모든 시간을 시간순대로 살지만, 그에 대한 깨달음은 사건의 순서대로 오지 않는 영혼을 가진 우리들.
미겔이 훌리오의 기억을 찾아주려는 여정은 실종된 친구의 기억 살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안에 간직되어 있음을 찾는 여정임과 동시에, '아코디언 연주자가 처음부터 다시 연주를 반복하는 것'과 같이 과거의 일을 현재로 깁는 일이기도 하다. 미완성 영화 마지막에 눈을 감는 것. 제목이 <클로즈 유어 아이즈>인 것.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첩이 눈을 감은, 거기에 있기 때문아닐까.
영화에는 완결이 있지만, 살아있는 삶은 완결이 없다.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의미가 끊임없이 추가된다. 그런 삶의 유기체적 모습을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담고 있다. 영화도 시도 완결된 듯 보이지만, 그 의미의 생산은 끝없는 삶같다. 어쩌면 영화의 힘, 예술의 힘이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눈을 감으라고. 눈을 감아야만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 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힘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 우리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영화와 예술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상상과 미지의 영역, 비로소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계.
그러니 보고 싶다면 눈을 감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