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폴링(2025)
시간은 상승하는 것일까, 떨어지는 것일까.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우리는 하나의 방향으로 간다. 사람이 겪는 시간은 단방향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시간은 그를 미래로 데려간다. 미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의 시대와 공간의 기억도 같이 미래로 간다. 이 단방향은 순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순차적으로 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이는 세대적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은 러닝 타임 내내 부러 시간을 조각내어 겹겹이 쌓는다. 그리고 묻는다. 시간은 과연 미래로만 가는 것이 맞느냐고. 현재에게로 쏟아지듯 떨어지는 것은 아니냐고.
독일 북부 알트마르크의 한 농장. 1910년대의 알마, 1940년대의 에리카, 1980년대의 앙겔리카, 그리고 2010년대의 렌카. 이 한 공간에서 네 개의 시대 속 삶이 곂쳐진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마는 어린 나이에도 도처에 널린 죽음을 보며 성장한다. 죽은 자를 위한 위령의 날, 자신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죽은 형제자매들의 사진. 징집을 피하고자 떨어져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던 오빠. '안전'을 위해 강제로 불임 시술받는 여자 하인들. 하녀로 팔려 가다 떨어져 죽은 언니 '리아'. 알마는 궁금하다, 과연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맞는지.
"한 단어를 오래 곱씹으면 단어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2차 세계대전의 말미의 에리카. 돼지 농장에서 다리가 절단된 남자가 어떻게 걸을지 궁금해한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아도 미소를 짓는 그녀. 몰려오는 군인들을 만나면 성폭력을 당할 수 있기에 모두 피난길에 오른다. 그녀는 피난하던 중 강에서 실종된다.
"들키지 않고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앙겔리카는 사춘기를 동독 시절에서 보낸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의 그 시선. 그녀는 삼촌과 근친관계를 가지며 죽음을 상상한다. 웃지 않는 엄마가 장어에 부러 손을 물리는 것을 보는 그녀.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는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밖에서 타인만 보기에 자기 자신이 어디 있는지 볼 수 없다."
베를린에서 알트마르크의 농가였던 그 집으로 이사 온 렌카. 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친구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나눠 듣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대대로 내려온 그 집과 그 강. 그녀는 태양 아래 피부 아래서 타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 시대와 달리 물리적으로 가장 안전한 삶을 보내고 있지만, 시대를 타고 내려오는 트라우마의 잔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렌카는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 그녀의 동생 넬리가 건초더미에서 떨어지며 끝난다.
인물 별로 묶어 나열했으나, 이 모든 장면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에테르같이, 가둘 수 없는 기체 같은 폭력과 침묵의 기억들. 직선적이지도, 순환하지도 않는다. 대신 층층이 쌓여 우리에게로 추락한다. 영화 속에서 분할되고 조각난 시간. 그 시간은 기체처럼 확산되어 결코 사라지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
현 세대에게로 쏟아지는 추락의 시간, 과거의 사람은 과거에만 있지 않다.
야간 공사
아주 조용히 짐승이 우는 듯했다
형광등은 재빨리 자신의 반경을 결정했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벌어진 틈과
물결 사이로 사라졌다
우리가 어둠에게 삼켜지는 동안
도처에서 공사는 계속되었고
수리가 계속되었고
음악이 계속되었다
몸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동안
고무공이 튀어 오르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열쇠들이
아래로 더 아래로
앞다퉈 쏟아졌다
나는 너의 내부로
떨어지고 있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꼬리를 내린 채 천천히 흔들었다
나는 그 풍경이 갖고 싶었다
현기증이 났다
불편한 곳에서는 이제 그만 자고 싶다
추락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짐승은 나였다
'아주 조용히 짐승이 우는 듯했다'로 시작하는 침묵과 추락의 이미지. 강지혜 시인의 <야간 공사>를 보면 추락이 반복하다 결국 숨죽여 우는 짐승, 그 침묵하고 추락하는 짐승이 자신임을 깨닫는다. 마치 <사운드 오브 폴링> 속 지난 세대의 지워진 이들의 기화된 트라우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현세대 곁에 잔존하듯 말이다.
시 속에서 묘사하듯 '우리가 어둠에 삼켜지는 동안' 세상에서는 일어날 일들이 무관하게 일어나고 있다. 침묵 속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계속되는 추락. 죽음과 전쟁 앞에 침묵한 알마와 에리카, 떨어져 죽은 리아와 넬리, 숨죽여 울다 폭력 속에서 실종된 앙겔리카. 이 모든 소리는 묵음이지만, 그 어느 소리보다 강렬하다.
같은 공간이 각인한 폭력의 기억으로 묶인 사람들. 세대적 트라우마는 비극이 일어난 어느 땅에서든 계속 전이된다. <사운드 오브 폴링>은 말해지지 않은 것, 보여지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 침묵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이니 우리가 그것을 봐야만 한다고. 들어야만 한다고.
그녀들의 불행한 모습만 매양 나오지 않고 웃음과 즐거운 순간 또한 영화는 담고 있다. 비극과 불행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러면서 종종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보고 있는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비극과 불행이 오롯한 '내'가 아니라고. 그리고 또 묻는다. 당신도 추락하는 시간에 침묵할 것이냐고.
우리는 시간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다. 과거는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로 덮쳐 오고 있다. 우리는 과연 추락에 침묵하지 않고 상승할 수 있을까.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답을 해줘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