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queer… disembodied.

퀴어(2024)

by 명태

간절하게 속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가. 어디선가 지나치듯 읽었던 신비의 식물까지 끌어와서라도 텔레파시 능력을 얻어 얽히고 싶은 사람이.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보다 더욱 완성될 수 없는 합일에 대한 갈망을 <퀴어>로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럼에도<퀴어>는 확실히 그 영화와는 다르다.


미니어처처럼 연출된 영화 속 배경들과 더불어 자신과 함께할 사람을 찾아다니는 퀴어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연극적이다. 그럼에도 연극적·허구적 연출은 어딘가 현실적이다. 게다가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이 등장하는 순간 허구가 현실이라고 합리화되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사랑 앞에서 서툴고 '뚝딱'이는 모습과 비현실적인 세트는 되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현실이라고 보는 것도 사실이 맞느냐고, 지금 느끼는 감정과 현실이 일치하느냐고. 당신도 disembodied냐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멕시코. 주인공 '리'는 여유있어 보이지만 외로워 보인다. 연극적인 그의 태도와 더불어 등장하는 곳은 연출된 무대처럼 작위적이다. 시대착오적 연출 요소가 곳곳에 의도적으로 보인다. 처음엔 왜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무대 연출적일까 싶었는데, 볼수록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것, 사회가 기대하는 몸과 나의 정체성이 맞지 않음이 '퀴어'로 지칭되는 감정일테니까. 그런 퀴어인 리는 끊임없이 단순히 하룻밤만을 보낼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사람, 자기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러다 길에서 초월적 느낌을 주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의 이름은 유진. 연출이 더욱 그렇게 잡아주기도 하지만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유유하고, 매끄럽고, 모호한 미소를 짧게 짓고, 무심하다. 어딘가 초월적이다. 진심을 영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가식 없어 보인다.



허겁지겁 그를 따라가는 리의 모습은 내내 우습다. 아니, 우스울 만큼 간절하다. 더 좋아하는 쪽이 진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미 마음의 추가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은 둘의 관계는 시작부터 비대칭적이다.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를 맺지만, 윌리엄의 갈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유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하며, 이러한 욕망은 점점 더 애절하고 집착적인 형태로 발전한다.



리의 간절한 구애와 유진의 수동적이고 애매한 수용 사이의 간극은 그저 짝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그 간극은 과연 '한 인간이 타자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 물음을 리 스스로 묻게 된 듯한 말이 처음 '야헤'라는 식물에 대해 언급할 때라고 생각한다.


소원해진 사이에 애가 타는 리는 유진을 설득해 남미 정글로 향한다. 마음 뜬 사랑을 잡으려 떠난 이 여정은 정신적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괴물이 있고 이미 벗어날 수 없다'는 영화 속 말처럼. 그들은 거울은 들여봤고 열린 문은 닫을 수 없으며 그 문으로 누군가는 나갔다.

겉으로 보이는 여행의 목적은 텔레파시가 가능한 야헤라는 식물을 찾아 떠난 여정이었다. 초반에 잠깐 나오지만 리에겐 계속 약물 중독 문제가 있었다. 헤로인과 코카인 등 여러 약물에 의존하던 그는 남미 여행 중 금단 증상으로 고통받는다.



재밌는 점은 계속 고고하고 매끈해 보이는 유진의 얼굴이 리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봤던 마약 사용 정황에 찌푸려지는 것이다. 이는 뒤에 이어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리를 돌봐주거나 같이 정글에서 야헤를 우린 차를 함께 마시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아직 원작을 읽지 않았고, 읽었다 해도 유진의 심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짐작건대, 그는 외면과 내면의 흐트러짐을 몹시 기피하고 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아마존의 켈슨 박사를 째려보는 원망의 얼굴만 해도. 그리고 의도적으로(아닐 수도 있겠으나) 멕시코에 돌아올 리를 피하는 것으로 보아서.



영화 내내 약물 중독과 사랑 중독이 교묘하게 병치되어 있음이 보인다. 리의 헤로인 중독은 유진에 대한 집착과 비슷하게 보인다. 아마 유진이라는 마약 덕에 남미에서의 헤로인 금단증상을 견딘 것일지도 모른다. 리에게 있어서 약물과 사랑. 둘 다 현실 도피의 수단이자 진정한 연결에 대한 절망적 대리물이 아닐까. 마약 환각으로 타인의 의식과 초월연결 같은 경험을 겪기도 하니까. 타자와 완전히 합일하고자 하는, 이해에 목마른 인간의 욕망이 야헤를 통한 텔레파시 능력 추구로 나타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에서 만나는 코터 박사라는 캐릭터는 정말 기괴한 기인인데 리의 파괴적 성향을 외부로 투사한 존재로 보인다. 그녀가 건넨 야헤를 마신 리와 유진의 모습은 사랑하는 이를 완벽히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모순의 가시화처럼 느껴졌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나신이 그대로 등장하는 성적 장면들이 나올 때 가장 타인과의 단절이 크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육체적으로 긴밀하게 붙어있는데, 정신적으로는 가장 단절된 상태. 가장 친밀한 순간 속 두 인물은 완전히 만날 수 없다는 역설.


그래서 '안겨있는 사람은 가장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있는,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수학자의 아침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시에서는 영화와는 다르게 수학의 공식과 개념이 갖는 비물질성 속 희망이 느껴진다. 기억을 상상하는 일, 비천한 육체에 깃든 기쁨에 대해 생각하는 일,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원주율같은 것, 앉고 있는 서로의 가장 가깝지만 알 수 없는 맞닿은 심장.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은 숨결이 작가인 리에겐 과연 닿을 수 있는 세계였을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 떠오른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결말의 새로운 탄생이 어떤 느낌인지 나에겐 감이 오지 않듯,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실패하고 그럼에도 그 사람을 갈망하는 마음은 내게 아직 먼 것 같다.


영화란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지녀 1개의 영화가 무한히 증가하는 n명의 영화로 나아가기도 한다. 아마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각각의 해석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선 사랑이란 불가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해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사랑이란 완전한 이해보다 불완전한 포용이 지속력이 높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지속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수학의 10대 난제, 과학의 10대 불가사의보다 더 신비한 것은 사랑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란 종의 끝나지 않을 노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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