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노란 꽃이 지는 마을에서
두 달이 지나간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애서 25일을 지내는 숙소가 있는 작은 동네는 내가 태어난 곳처럼 느껴진다.
1970년 대 초 우리 동네랑 비슷한 풍경이다. 집집마다 마당이나 텃밭이 있다. 소가 들판에서 먹이를 뜯고 꼬재재한 꼬마들이 모여서 놀고 있다. 마당을 거니는 닭들, 담벼락 아래 낮잠 자는 강아지와 지붕 위 고양이가 오후의 휴식을 취한다.
이 풍경은 내 어린 시절 그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올드타운에 한 번 나가보고는 숙소에서 요가를 하고 마을을 산책한다. 이제 이 동네에서 우리 부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 “사와디카” 인사를 건넨다.
오후 3시부터 8시 사이 열리는 야시장에는 우리 단골집도 생겼다.
숙소 주인의 초대로 집을 방문했다. 텃밭에는 상추와 고수와 레몬그라스, 양배추가 자란다. 우리는 여러 번 싱싱한 야채를 얻어왔다. 안주인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으며 외부로 나가지 않고 결혼해서 지금껏 산다고 했다. 선생님으로 퇴직하셨다고. 자녀는 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출가했고 손녀도 제법 컸다. 주인의 남동생, 안주인의 언니 모두 한 울타리에 살고 있다. 안주인의 언니는 50년 동안 의상실을 운영해 오고 있다. 일흔이 조금 넘으셨는데, 작업실은 그녀와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노란 꽃, 텅 울라히
치앙마이 길가에는 재스민 꽃, 파파야 열매, 마용 칩(?) 같은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이 흔하다.
그중에서도 노란 꽃 텅 울라히는 정말 흔하다.
처음 이 꽃을 봤을 때 나는 무궁화처럼 태국의 국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태국의 국화는 카시아(Cassia fistula)로, 태국어 이름은 라차프륵(ราชพฤกษ์)이며, 노란색이다. )
텅 울라히는 태국어로 ‘황금 나팔’이라는 뜻이다.
4월부터 5월, 건기가 끝나갈 무렵 이 나무는 온통 노란 꽃으로 뒤덮인다. 잎도 없이 꽃만 피어난 나무는 마치 하늘을 향해 황금빛 나팔을 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꽃은 더위가 가장 극심할 때 핀다.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땅에서, 타는 듯한 햇살 아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랗게 피어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꽃이 비의 전령사라고 말한다.
나는 이 노란 꽃이 참 좋다. 화려하지도, 향기가 진하지도 않지만, 그저 묵묵히 계절을 알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곧 비가 올 거예요, 더위는 이제 끝나갑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이 동네를 떠날 때쯤이면 텅 울라히는 지고 있을 것이다. 노란 꽃잎이 길바닥에 흩어져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위를 걸으며 이 마을과 작별 인사를 나눌 것이다.
여행은 시작이자 마무리
오늘 숙소에 3개월 머물던 독일 아저씨가 떠났다. 우리는 올 겨울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한국은 꽤 춥고 눈도 많았다고 한다. 나는 이제 슬슬 여행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남은 일정은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4-5일은 차량으로 근교를 다녀올 예정이다. 치앙라이에 가서 그리운 사람을 보고, 람푼과 람빵, 난까지 다녀올 수 있을까?
이 작은 동네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매일 삼시 세끼를 해 먹던 주방이 있는 숙소, 야시장 단골집 삼촌들과 아주머니의 미소, 길에서 만나면 손 흔들던 동네 아이들, 의상실에서 묵묵히 재봉틀을 돌리던 일흔 살이 넘은 할머니.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동네 이발소 아저씨. 참고로 머리는 80밧. 100밧 드리니 너무 행복해하셨다. 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노랗게 피었다 지는 텅 울라히.
치앙마이는 오래전 우리들이 나고 자란 고향의 모습과 많이 겹쳐지는 풍경이 있다. 어쩌면 이곳은 내가 잃어버렸던 어떤 시간을 돌려준 곳인지도 모른다.
닭이 마당을 거니는 오전, 고양이가 지붕에서 낮잠 자는 평화로운 오후,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작은 마을의 온기.
2월 15일, 나는 이곳을 떠난다. 하지만 이별은 슬픔이 아니다. 여행은 시작이자 마무리이고, 모든 만남은 다음 만남을 위한 씨앗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치앙마이, 안녕.
그때까지 노란 꽃은 또 피고 질 것이고,
나는 어딘가에서 그 꽃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