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감정

내게는 벅찰 뿐

by Deil

우울이 밀려온다.

공허하다.

너무나 바쁘게 2주를 달려 숨 고를 시간이 온 이 밤에 우울이 밀려온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쉬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 것이다. 고요할 때 엄습해오는 이 우울은 언제나 익숙지가 않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감정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게 날 살게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

지금은 후자이다.

우울할 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힘들다.

기대어 보고 싶고, 가끔은 서러워지며, 원망으로도 변하게 하니까.

‘왜 나의 곁에 있지도 못하면서 나에게 떠올랐니?’라는 잔인함이 있다.

‘너 또한 어느 날밤에는 외로움 끝에 내가 떠올라 더 괴로운 날이 있길 바래.’

하지만 이 못난 조각을 차마 마음에 품을 수는 없어 다시 조용히 내려놓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답답함이 자책으로, 자책은 정서적 불안으로 그리고 그 불안의 자각이 우울로 나를 몰아버린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이 네 가지 감정의 변화를 다 거치며 벼랑 끝에 까치발로 서있게 한다.


우울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성숙한 감정이라 하였다.

이 말이 또 떠오르지만 여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 인격을 제일 풍부히 담고 있는 감정이라 그런 것일까?

우울을 인식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에게나 이 말이 이해되지 않을까?

우울한 사람에게 성숙이라니.

잘 모르겠다.


아직 추운 겨울밤인데도 가슴이 답답하여 창문을 열어놓으니 조금은 나아진다.

공기가 오늘도 위로구나. 언제까지 공기나 바람의 존재로부터만 위로를 받을까?

사람들이란 존재는 마음을 시끄럽게 어지럽혀서 아플 땐 소리 없는 존재들 앞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에게 말로 뱉어내고, 침묵과 눈빛으로 위로받다가 결국 너무나 따뜻한 말속에 안기고 싶다. 괜찮은 위로의 ‘말’ 말고 나와 함께 머물러 주는 ‘행위’. 그걸 경험하고 싶다. 위로의 시작은 아픈 곳에서 같이 머무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정말 놀라울 만큼의 사람들이 모른다. 그래서 정리해놓은 마음을 부산스럽게 또 어지럽히다가 나가버린다.

하아.. 그 마음 또 누구보고 치우라고.. 부산 떠는 건 몇 초, 올 바른 자리에 마음 배치하는 데는 며칠.


평생 함께 갈 우울을 자연스럽게 받아내기에는 아직도 많이 멀어있구나. 창문 밖에 고개를 내미어 한숨을 내쉬어보니 그래도 완화가 된다. 이렇게 오늘도 공기는 그렇게 우울을 어느 정도 내 안에서 떠안고 가준다. 고요함을 고요함으로 흘려보내는 밤. 이 정도로 지나가 준 게 다행이지만 여전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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