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by 이두

살다 보면 가끔은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을 풀어내어 쏟아버려 내 마음을 정화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모든 글이란 기억의 분출 이외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잊어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그때 우리는 새파란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래도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나름 서울 중상위대 대학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으로 어깨에 뽕이 들어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저 덜 떨어진 문학 지망생에 지나지 않았다. 술은 또 그렇게 오부지게 마셔대었다. 부어라 마셔라, 체력이 받쳐주고, 싱싱한 간은 전날 아무리 퍼 마셔도 다음날은 생생했다. 간 때문이라는 간장약 광고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싱싱한 간 때문에 우리는 마시고 또 마셨다.


특이한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건국대 축산학과에 다니는 친구였는데 국문과인 내가 다니던 학과에 도강을 했다. 와서는 특정 선생의 시강의를 듣거나 했다. 우리는 곧 술집에서 만났고 의기 투합했고 서로를 찾았다. 맨날 우리 쪽으로 오던 친구를 찾아 우리는 그날따라 건국대까지 그 친구를 찾아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가고 또 쳐들어오기도 했다. 두 명이서 우리는 건국대를 쳐들어 갔다.


아직 수업 중인 친구를 우리는 건국대 일감호 호수 앞에서 기다렸다. 일감호는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호수는 넓었다. 친구는 빨리 오지 않았다. 근 2시간을 기다려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허탕이었다. 웅이란 친구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석이란 짜식 오라더니 어디로 튀어 버린 거야”

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건대 앞에서 한잔하지 모처럼 새로운 곳인데 멋지지 않겠어”

우리는 터덜거리며 일감호를 빠져나왔다. 술집은 대학 정문을 지나 뒷골목에 산재해 있었다. 해가 중천에 걸려있었지만 우리는 중간고사도 끝났다는 핑계로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름 술집이란 것이 대게 그랬다. 한쪽 벽에서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술 상 위에서는 파리 몇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늙수그레한 여인네가 물었다.

“술? 뭘로 할까?”


“당연히 막걸리죠…” 웅이가 받았다. 이어 안주는 한참을 생각하다 두부 한 모만 썰어 주시면 돼요 하고 말했다. 아낙은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두부 한 모 가지고 되겠어 사람이 둘인데”

먹어 보고 모자라면 더 시킨다고 웅이 말했다.


술이 한 순 배 돌았을 때 우리는 한쪽 벽에 기대어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면도는 하지 않았고 머리는 이발을 한지 오래된 듯 길게 자라 있었다. 조용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웅이와 나는 그를 무시하고 술을 마셨다. 그러자 그가 곧 우리를 보며 말했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데 합석하면 안 될까요?

골똘한 생각을 마친 듯 그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사람 좋은 웅이는 말했다.

“왜 안 되겠어요. 어서 오세요”


그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특히 여름 한낮에 대학가 술집 앞에서 술을 마시는 30대 남자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술이 몇 순 배 더 돌자 그는 말했다. 자신이 모 대학 학생회장 출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 때 데모대의 맨 앞에서 투쟁했다고 했다. 거기서 웅이는 눈을 반짝였다.


“그러셨군요. 아, 우리도 한 두 해만 일찍 들어왔어도 그 선두에 서는 건데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나는 그 선밴가 하는 작자의 말이 미덥지 않았다. 그래도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자의 말이 점점 더 과장되이 흘러갔다.


“너희들 알아, 내가 그 시계탑 2층에서 전단을 뿌렸단 말이야, 그랬더니 그 백골단인가 하는 청바지 입은 놈들이 쫙 쏟아져 나와서는 2층으로 벌떼같이 몰려와서는 내 팔목을 뒤로하고 결박해서 끌려갔거든”

웅이와 나는 귀를 세우고 듣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데요….”

“어찌 되긴, 남영동인가 하는 곳으로 끌려가서 죽도록 쳐 맞았지…. 이 머리 뒤에 상처 보이지” 하며 그는 뒷 머리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웅이와 나는 그 선배의 말을 정말로 믿었다. 그리고 연신 선배에게 술을 권했다.

“자네들도 들어, 이거 나만 먹자니 쑥스럽군….”


내가 술집 아주머니에게 술을 더 시켰다. 이미 술상 주변에는 막걸리통이 예닐곱 병이 서 있었다. 웅이와 나도 질 세라 막걸리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한 세시쯤 시작한 술이 시계가 다섯 시를 가리키는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이윽고 선배가 횡설 수설 되지도 않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조진 형사 놈 있지, 내가 찾아가서 반드시 죽일 거야, 반드시 말이야, 그놈을 죽이려고 칼도 준비해 두었어, 우리 집에 가서 자고 가, 그 칼을 보여 줄 거니까?

내가 말했다.


“아무리 그러하다고 해도 그놈을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적당이 칼침 한번 놓아주면 안 될까요? 그러면 그놈도 정신 차리게 될 터인데”

“아니야, 아니야 꼭 찾아내서 죽여버려야 이 땅의 민주화가 온 단 말이야”

그러고는 머리를 술상 위로 엎었다. 그리고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을 뿐 눈이 풀리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와 웅이는 고심했다.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었다.


술집 아주머니는 술꾼을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아이고, 너무 취했네, 술을 그만 주어, 사람 잡겠어, 그리고 술도 이제 그만 마시고 데리고 나가, 어서”

술집 아주머니의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더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사태를 깨닫기 시작했다.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리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려와 깔렸다.

웅이가 사내의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 일어나 보라니까요. 내 말 들려요”

“그럼 잘 들리지…….”

혀가 꼬인 목소리로 사내는 말했다.

“나 안 취했어, 우리 집 가서 한잔 더 해 친구들, 자네 같은 친구들만 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민주화를 이루었을 텐데……”

기어코 자신의 집으로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웅이와 사는 사내를 부축해서 술집을 겨우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면 돼요?”

웅이가 묻자 사내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도저히 걸들 수가 없었다. 결국 웅이는 사내를 둘러업었다. 다행히 사내는 뼈만 남은 듯 가벼워 체격이 좋았던 웅이가 사내를 업을 수 있었다.

여름 저녁에 술 집 골목에는 돼지고기 기름과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웅이와 나는 사내를 번갈아 업고 사내가 지시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말했다.

“우리 집에 가면 좋은 양주, 조니워커가 한병 모셔져 있어, 그거 한병 가서 빨자고”

우리는 사내의 말을 믿었다. 민주의 투사가 이렇게 영락해서 술집 골목을 전전하고 있는 지금은 독재의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몇 골목을 돌아 사내가 집이라고 지칭한 집으로 들어섰다. 그때 사내의 늙은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를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못살아, 허구한 날 술이니 어찌 사나, 영, 이제 술 좀 그만 먹고 떠난 계집은 잊고 살아야지, 니 딸년은 어쩔 거야”

웅이가 말했다.

“선배가 그래도 민주화의 투사인데,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그러자 늙은 아낙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민주의 투사? 뭔 말라비틀어진 민주의 투사 말씀 하는 거요, 한두 번이어야지, 민주의 투사 웃기는 소리 하지 마셔, 맨난 민주의 투사래, 또 학생회장이라고 뻥치고 술을 마셨지, 내 다 알아, 이놈은 학생회장은커녕 대학 문도 밟아 보지 않은 놈인데, 몰랄슈”


그제야 웅이와 나는 서로의 어리석음을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사내가 낮게 노래를 웅얼거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는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이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그 웅얼거리는 노래 뒤로 골목의 전봇대 위의 외등이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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