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트남에 가본 적도 없고, 베트남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다. 다만 베트남 통일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있었던 편이어서 지난 세기 베트남이 겪은 세월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법 읽었다 할 수도 있겠다. 특히 월남이라고 부르던 남베트남이 망한 1975년 4월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 무렵 아직 열혈청년이었던 나는 베트남식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때 나는 논산 훈련소 수용연대에 있었다. 보통 징집된 병력들은 그곳에서 사나흘쯤 대기하다가 피복과 장비들을 수령한 후 훈련소로 가기 마련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꽉 찬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입대할 때 입었던 옷을 한 달 동안 입고 있었으니 그 옷이 오죽했으랴! 나중에 그 옷을 받아 든 어머니는 한참을 우셨단다. 나는 그곳에서 몇 차례 보안대의 조사와 심문을 받았었다. 하여 그 사월과 오월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즈음 내 가게와 인접한 네일 숍의 젊은 주인인 리와 종업원 피터와는 가깝게 인사하며 지낸다. 모두 사십 대 베트남계 미국인들이다. 내가 나이 들었다고 ‘썰, 썰(Sir)’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그냥 ‘영(Young)’이라고 하라고 했더니 요사이는 ‘미스터 김’으로 고정되었다.
여기까지가 베트남 하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전부다.
그리고 읽게 된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이 쓴 장편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다. 소설 ‘동조자’는 분명 베트남과 베트남인들의 이야기인데, 소설은 내게 전혀 낯설지 않은 내 아버지 세대와 내 세대 나아가 내 아이들 세대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인 신부(神父)를 아버지로 십 대 초반 어린 나이 베트남 여인(?)을 엄마로 하여 태어난 주인공 ‘나’는 이야기 내내 이런 모습을 유지한다. 두 얼굴의 남자, 두 마음의 남자로.
이야기의 무대는 1975년 남베트남 패망 또는 베트남 통일 시점부터 1979년 사이 베트남과 미국, 필리핀, 태국 등이다.
그런데 전혀 낯설지 않게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다만 시점은 뒤죽박죽인 채로. 마치 1920년 이후 오늘까지 어쩌면 우리들의 미래까지 겹쳐지는 한반도를 무대로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읽으며 포스트잇을 붙여 기억하고픈 대목들 중 몇 개.
<비극은 옳음과 그름이 아니라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이었고, 이것은 역사에 참여하고 싶은 우리 중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였습니다.>
<나는 흰색이 단순히 순수나 순결과 관련된 색상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도와 죽음의 표시 이기도 했습니다.>
<심문은 정신적인 것이 맨 먼저이고, 육체적인 것은 그다음이야. 여러분은 신체의 멍이나 어떤 흔적을 남길 필요조차 없어. 언뜻 납득이 잘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지, 안 그래? 하지만 사실이야. 우리는 실험실에서 그걸 입증하느라 지금껏 수백만 달러를 썼어.> – CIA 미국 고문관의 말
<그들은 나한테는 예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예뻤습니다.>
<내가 그의 아픈 곳을, 양심이라는 명치를 쳤고, 그곳은 모든 이상주의자가 상처 입기 쉬운 부분이었으니까요. 이상주의자를 무력하게 만들기는 쉽습니다. 이상주의자에게 자신이 선택한 특별한 전투의 최전방에 가 있지 않은 이유를 묻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대개 우리가 스스로를 보는 방식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방식이 똑같지 않은데도, 우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진짜로 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문장.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걸고, 이 한 가지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책장을 덮기 전 다시 곱씹었던 대목이다.
<여러분께 제 ‘아메리칸드림’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아메리칸드림’은 죽기 전에 내가 태어난 땅을 보는 것, 다시 한번 떠이닌(내 장모의 고향은 평북 정주 - 아내는 돌아가신 장모 대신 그곳에 가보는 꿈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에 있는 우리 집안 정원의 나무에서 잘 익은 감을 맛보는 것입니다. 제 ‘아메리칸드림’은 조부모님의 무덤에서 향을 피울 수 있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토록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마침내 평온해지고 총성이 환호성에 가려 들리지 않게 될 때 온 나라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제 ‘아메리칸드림’은…… 전쟁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남자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큰소리로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2025년 오늘, 이웃 네일숍 젊은 베트남 친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들의 모국 베트남 전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평온하게 전쟁에 대한 걱정 없이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희망적인 자답(自答)을 잃지 않는다. ‘내가 살아남아서’가 아니라 ‘살아남아 이어가는 우리들'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