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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그 심사(心思)

by 김영근

엊저녁 요란한 셀폰 소리와 함께 뜬 문자 메시지였다. ‘곧 토네이도가 우리 지역을 가로질러 지나갈 예정이니, 운전을 삼가고 지하실이나 낮은 곳으로 대피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새까맣게 변하더니만 창문을 세게 두드리는 빗소리와 함께 앞뜰 전나무 그 무거운 가지들이 마치 종잇장 펄럭이듯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내 전기가 나갔다.


오늘 아침, 도로 곳곳에는 간밤에 휩쓸고 지나간 토네이도가 남긴 상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터로 나가는 길목을 쓰러진 나무가 막아서서 길을 되돌려 한참을 돌아 나갔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잠시 일터에 들렸다가 아내와 함께 딸 내외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두어 주 전에 약속했던 길이었다. 약속 장소는 얼추 두 시간 반 운전해야 하는 곳이었다. 이젠 대도시에 들어가는 운전은 썩 내키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버스나 기차를 타기엔 번거롭고 시간을 맞추기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아이들과 적절히 타협해서 결정한 장소였다.


지난 두어 주간은 장마철 같았다. 매일 오락가락하는 비와 후덥지근하고 눅눅하게 마치 땀에 젖은 몸에 비닐 포장지가 몸에 감기는 듯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날씨뿐만 아니라 세상 소식들 까지도.


딸 내외를 만나러 가는 오늘 아침 길은 마냥 상쾌했다. 하늘은 높고 맑게 푸르렀고 이는 마른바람은 며칠 쳐진 마음을 활짝 펴게 하였다.


때로 대도시는 서울로 내게 다가온다. 많은 한국사람들과 제법 그럴듯한 한국 음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 한국식당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들이 그리 적은 곳도 아니다. 그러나 대도시와 시골의 차이는 엄연히 드러나 있게 마련이다.


딸과 사위와 함께 밥상을 나누고, 공원 길을 함께 걷고, 장도 보고 차를 마시며 오후 한 때를 보냈다. 말해 무엇하랴! 그저 사는 행복인 것을. 잠시라도 한 마음으로 함께 걸은 길임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내가 좋아하는 시대의 노래꾼 장사익 선생의 소리를 들으며 내려왔다. 우리 동네에 거의 다 달았음을 알리는 델라웨어 메모리얼 다리를 건널 즈음 장사익선생은 예의 그 애틋한 소리로 ‘청춘고백’을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바닥을 딱 치며 소리쳤다. “맞아! 이거 딱 자기 얘기네! 곰곰 잘 생각해 보시게! 딱 맞잖아!!”


1955년 가수 남인수 님이 불렀다는 노래 ‘청춘고백’의 노랫말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 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내 심사/믿는다 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이내 청춘


좋다 할 때 뿌리치고 싫다 할 때 달겨드는/ 모를 것 이내 마음/ 봉오리 꺾어서 울려 놓고 본체만체 왜 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이내 청춘>


함께 따라 부르다 느닷없이 다가온 아내의 물음이자 단정적 결어에 응답했던 말이다. “에고, 이 사람아!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대단한 게 뭐 있겠어!”


늦은 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을 보며 혼자 읊조려 보는 말, ‘그려, 그렇지 뭐. 어찌 청춘뿐이겠어. 모든 길이 그렇지, 그때 그 사람 심사 하나에 달린 일이거늘.’


오늘 하루는 참 행복했다는 내 심사(心思)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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