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찌는 날씨 탓 하는 사이에 유월이 슬그머니 줄행랑을 칩니다. 올해 2025년도 어느새 반이 지나갑니다. ‘당신, 이거 알아요?’하며 유월이 가고 있는 사실을 일깨운 이는 매주 토요일 ‘The Morning’ 편지를 띄우는 <뉴욕타임스> 문화·라이프스타일 부편집장인 Melissa Kirsch입니다.
그는 오늘 아침 ‘더 나은 반쪽(Better half)’이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가르쳐 주었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인 7월 2일이 올 2025년의 딱 중간지점이라는 사실입니다. 7월 2일 앞뒤로 182일이 지나갔고, 182일을 새로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겨울이었던 지난 1월 1일에 세웠던 새해 결심을 되돌아보고, 한 해의 반을 보내면서 “여름 리셋(Summer Reset)”을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권유에 그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나를 가장 나답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제가 보낸 지난 반년의 시간들과 맞이할 나머지 반년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살며 이런저런 흉내 짓을 많이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그중 마지막 순간까지 흉내 내며 살고 싶은 것 하나를 꼽자면, ‘지난 일을 돌아보는 순간엔 그저 감사를 입에 달자!’라는 흉내짓입니다.
돌아보는 지난 반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자신부터 시작하여 아내와 자식들, 형제들,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 가까운 이웃들과 친구들, 그리고 간간이 소식 전하며 사는 오랜 옛 친구들에게 두루두루 보내는 감사입니다.
지난 연초에 세웠던 결심들과 계획들은 거의 엇나갔거나 여전히 손대지 못하고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것들도 있지만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 맘으로 천천히 지난 반년을 돌아보다가 감사가 솟구치는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5월 17일이었습니다. 필라 5.18 민주화 운동 4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제45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느꼈던 감사가 첫 번째입니다. 저녁시간이고 해서 가지 않으려 했었답니다. 해 떨어진 후 하는 운전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데 행사장에서 저보다 훨씬 먼 데 사는 후배가 전한 ‘저는 두 시간 반 운전해서 올라갑니다’라는 말에 부끄러워서 참석하게 된 자리였답니다.
그날 감사의 흥을 돋우어 준 이들은 이민 2세(1.5세 인지도 모르지만 거의 2세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만)인 필라 한인회장과 필라 우리 센터 일꾼 한 사람이었습니다. 45주년 행사를 맞기까지 그 행사에 필라 한인회장이 참석한 것은 처음 일이라는 말에 많이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45년 전 일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광주 항쟁의 뜻”이 무엇일까?를 궁금해하며 알고 이해하려고 열심히 시간을 내어 노력해 왔다는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감사의 크기는 정말 컸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바로 지난 토요일인 6월 21일 ‘더불어 힘차게(Stronger Together)’라는 이름으로 열린 ‘우리 센터 갈라 2025년’ 행사에서 그 두 사람들을 다시 만났답니다. 필라 우리 센터는 ‘저소득층 및 중산층, 이민자, 유색인종, 성소수자, 그리고 기타 소외된 공동체가 함께 변화의 주체로서 협력하여 우리 모두가 번영할 수 있는 더욱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세상을 꿈’ 꾸며 행동하며 사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이 날, 가정에 대한 감사를 비롯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를 말하는 스물 언저리 나이의 젊은이들의 소리들과 지나간 모든 험난했던 이민생활들이 그저 감사로 다가온다는 마치 내 누이 같은 어느 일세 할머니의 소리와 이젠 우리 이민자들이 변두리 인생이 아니라 이 땅의 중심부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한국계 젊은 정치인의 뜨거운 외침을 들으며 치솟던 감사가 다시 떠오릅니다.
비록 더할 수 없이 막강해 보이는 트럼프 치세의 오늘을 보낼지라도 말이지요.
작가 한강 선생으로 유명해진 말 가운데 하나지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큰 담론은 잘 모릅니다. 다만 <과거를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서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구하며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기도로 사는 이들과 조금은 더 많은 시간들을 나누며 사는 반년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비록 흉내짓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