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복(初伏)도 맞지 않았건만 여름은 벌써 지루하다. 온종일 물기 가득 품은 더운 공기 때문인지 아님 나이 탓인지 이따금 숨이 가쁜 듯한 기분이 들곤 하여 바깥일은 삼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비는 잡초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양제인가 보다. 며칠 사이에 화단과 텃밭은 잡초들 세상이 되었다. “어이구 저 놈들 손을 좀 봐야 되는데…” 혼자소리 끌끌거리면서도 호미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더위의 기승은 한껏 세차다.
때때로 비는 거센 바람과 천둥 번개와 함께여서 맘껏 게을러진 몸을 더욱 움츠리곤 한다. 뉴스 속 물난리는 이곳저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엊그제는 뉴욕 일대 물난리 소식에 놀라 딸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와 문자를 넣었지만 한동안 응답 없던 아이는 밤늦게 짧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거긴 우리랑은 거리가 멀어!’ 암만 생각해도 딸년은 꼭 나를 닮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걱정 그득한 물음을 던지셨을 때면 나는 늘 딸아이처럼 대답했었다. 짧고 퉁명스럽게.
어제 오전엔 모처럼 비도 그치고 기온도 조금 떨어져 뜰일하기 좋은 날이었다. 이른 아침 가게문을 열어 놓곤 이내 집으로 들어와 잡초들과 싸움판을 벌였다. 진짜 싸움은 잡초들이 아니라 사슴들이었다. 올해는 날씨뿐만 아니라 사슴들 극성도 여간 아니다.
텃밭이나 화단을 자기 밥상으로 생각하는 녀석들은 사슴뿐만은 아니다. 토끼, 다람쥐, 여우, 새들이 들락거리며 즐기는 일들은 허다하여 그러려니 하며 지낸다. 그 맘먹어야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즈음엔 사슴에게 품은 내 앙심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글라디올러스 때문이다. 글라디올러스가 꽃망울들을 맺기 무섭게 밤이면 사슴들은 그 아름다움을 야식거리로 즐긴다. 참다못해 밤새 화단을 환하게 밝혀 놓았더니 글라디올러스 환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깜박하고 뒤뜰을 밝히는 전원을 끄고 잠들었던 밤에 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눈을 뜬 아침에 내가 잃은 것들은 글라디올러스 꽃들만이 아니었다. 잠시 게을렀던 내 삶 속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이 마구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어제 아침 글라디올러스를 울타리 친 텃밭으로 옮겨 심고 있을 때, 멀리 사는 옛 어릴 적 동무가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부엔 물난리가 났다더니만, 거긴 괞찮은지?’
사람 사는 일이란 참 신기하기도 하다. 덥고, 끈끈하고, 지루하고, 게을러지고 마침내 홧김으로 땀을 흘리다가도 누군가가 묻는 말 한마디에 사는 맛이 나기도 하는 게 사람 사는 일이므로.
저녁나절에 내 눈길을 끌어 더위 속에 황홀하게 한참을 서 있게 한 꽃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나무 그늘 아래서 ‘이 사람아! 이깟 날씨 탓으로 그리 쳐지다니….”하며 환한 웃음으로 말을 건넨 들꽃들이었다. 나는 올 들어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물 한 방울, 거름 한 꼬집도 던져 준 적 없고 더더군다나 눈길 한 번 주어 본 일 없는 꽃들이었다.
감히 내가 신을 만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지루할 때, 절박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잘 나갈 때,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들이 이어질 때 그 모든 내 삶의 순간순간마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터이지만. 그 만남을 고백할 수 있는 삶은 내가 이어가는 것이니.
삼복(三伏) 더위가 제 아무리 긴다 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