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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그래 또는 Summer Time

by 김영근

여느 일요일과 다르게 이른 아침부터 조금 부산스러웠습니다. 주문해 둔 떡을 찾으러 필라델피아 한인 마트에 들렀다가, 이젠 가는 길을 다 잊어버린 아들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를 찾아가려고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를 가본 지가 어느새 거의 십 년이 다 되었습니다. 아들 내외 결혼식 이후로 처음 길이었습니다.


오늘은 손녀가 유아세례를 받는 날입니다. 예배시간이 오전 10시여서 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렀답니다.


이즈음 들어 제 기억에 대한 확신이 많이 줄어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확고한 편이어서 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대한 의문은 조금치도 없었답니다. 교회까지는 내비게이션의 도움도 있었으니 잘 찾아갔답니다. 문제는 교회 출입문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제 기억과 씨름을 하게 된 일입니다. ‘이 쪽이었는데….???’, ‘저 쪽이었던가…?’하며 떡상자를 들고 오가다 만난 얼굴 까만 건장한 중년의 젊은이에게 물었답니다. ‘이게 교회 건물 맞지요?’, 그의 응답, ‘예, 맞습니다,’ 이어진 내 질문, ‘혹시 교회 들어가는 문이 어느 쪽인지…?’ 이어진 그의 대답, ‘저를 쫓아오시면 됩니다. 제가 이 교회 목사입니다. 교회는 처음이신가요?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요?’ 이쯤 되면 당연히 답은 아내의 차례, ‘오늘 유아세례 받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예요.’


회색 무늬가 박힌 검정 티셔츠에 아주 흔한 검정 폴리에스터 바지 아래 운동화를 신은 그의 모습에서 주일 아침 목사의 모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이내 약 한 시간 반 이어진 예배를 통해 저는 그에게 경이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 의식에 동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우선은 세례의식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아이 하나만을 위한 의식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제겐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거의 15분 정도의 시간을 아이와 가족들과 예수와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의식을 행했으며, 의식이 끝난 후 예배 공동체들과 아이와 가족들이 함께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이지요.


그리고 예배 마지막 시간에 30분 넘게 이어진 그의 설교였습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손뼉 치고 춤추고 온 얼굴에 땀을 줄줄 흘려가며 이어진 그의 설교는 마치 제가 유년주일 학교 떼 들었던 정말 단순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쩜 진실한 설교란 아주 단순한 이야기여야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답니다.


예배 후 사돈내외와 아들 며느리, 뉴욕에서 내려온 딸과 사위와 함께 아이 재롱을 한껏 즐기는 시간을 가진 후 내려왔답니다.


내려오는 길, 농사짓는 친구 농장에 들려 잠시 늙어가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농장 꽃밭에서 아내와 증명사진도 하나 찍고, 그렇게 오후 한 때를 보냈답니다.


늦은 저녁, 어릴 적 동무 넷이 거의 반 세기 만에 다시 만나 얼굴 마주한 이후, 아주 가끔씩 잊을만하면 서로의 건강을 묻고 사는 카톡방에서 한 친구가 올린 영상과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오늘 하루의 감사와 제 지난 삶에 대한 감사, 그리고 제 아이들이 누릴 감사를 곱씹는 시간을 가져 보았답니다.


영상엔 제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 곳곳에 있는 정말 경이롭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영상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과 노래는 저희들이 동무였던 그 어릴 적에 듣던 루이 암스트롱의 Summer Time이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손발 끝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덥고 답답한 여름날 앙앙거리며 우는 아기 울음을 듣는 그런 날 아이를 달래는 노래, 루이 암스트롱의 그 독특한 음색의 인생 응원가 Summer Time은 오늘 제 인생 일기의 마침표였습니다.


제 지난 인생과 오늘의 삶에 이어, 오늘 유야세례를 받은 제 손녀에게 주는 응원가였습니다.


이 뜨거운 날처럼 이어지는 인생길, 그 어느 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사랑의 눈길과 손길들을 잊지 않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경자, 경애, 병덕이. 이 더위에 Summer Time 노래를 함께 나누며 서로를 북돋는 동무들 이름입니다.


기도하기를… 제 손녀에게도… 참 좋은 삶의 길동무들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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