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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by 김영근

Cofran 씨 내외는 제 가게 오랜 단골손님들입니다. 아니, 한 분은 단골손님이었군요. 제 가게인 세탁소를 주로 찾아오셨던 이는 Cofran 부인이었습니다. 세련된 맵시에 매사 호, 불호가 명확한 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은퇴를 했거니와 이재에도 제법 밝아 내외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쇼핑센터 몇 개와 임대 아파트를 소유한 재력가이기도 합니다.


부인이 대학교 일을 그만두고 은퇴한 이후에 잦아진 일입니다만, 그녀는 옷을 들고 와 세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옷가지들을 제 아내에게 ‘잘 맞을 것 같고, 어울릴 것 같다’며 주곤 가곤 하였답니다. 이상한 일은 옷에 대해선 조금은 까탈스러운 아내가 그녀가 주고 간 옷들을 맘에 들어했고, 몸에 잘 맞기도 했고 어울리기까지 했답니다. 아내는 그 옷들을 즐겨 입곤 하였습니다. 어쩌다 세탁소로 들어선 Cofran 부인이 자신이 준 옷을 입고 맞이하는 아내를 보면 참 좋아했답니다. 나중엔 옷가지에 이어 신던 구두까지 들고 오곤 했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극성을 부렸던 때였습니다. 가게를 여는 둥 마는 둥 할 때의 일이었지요. 그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던 날 가게로 들어선 그녀가 물었답니다. ‘저 쌓인 눈 치우는 제설비는 건물주가 관리비로 청구하겠네요?’. 제 대답이었지요. ‘잘 아실 텐데 당연하지요.’


그리고 며칠 후였습니다. 그녀가 가게로 들어와 봉투 하나를 내밀곤 ‘올 겨울은 손님들도 없었을 텐데… 올 겨울 제설비는 제가 낼게요.’하며 급히 돌아서 나갔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 겨울기간 동안 부과된 관리비를 충분히 낼만한 제법 큰돈이 들어있었답니다. 다시 가게를 찾아온 날, 우리 내외는 극구 사양했지만 그녀의 호의를 꺾지는 못했답니다.


은퇴 후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가게를 찾곤 하였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칠십 고개를 다 넘지 못하고 칠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Cofran 씨가 예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게로 들어섰답니다. ‘어떻게 지내느냐?’, ‘몸은 건강하시냐?’는 우리 내외의 인사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천천히 멈추지 않는 혼자 말로 이어졌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제가 육 년 전에 암과 싸우기 시작했잖아요. 다 나았다고 했는데…. 그게 재발이 되어서 병원을 오간답니다. 뭐 괜찮아요. 그럴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아내가 떠난 후 참 적응되지 않는 게 하나 있어요. 뭔지 알아요? 외로움이에요. 외로움요. TV를 켜놓고 혼자 이야기해요. ‘뭘 볼까….’ 그러다 곁에 있는 강아지에게 물어요. ‘얘, 내가 뭘 보면 좋겠니?’ 그러면 녀석은 머리만 요리조리 돌리고 있답니다. … 외로움…”


환하게 웃으며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눈가엔 물기가 번뜩거렸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를 참 많이 해 주시는 누님 같은 장로님이 한 분 계시답니다. 부군 되시는 권사님은 저희 내외를 참 많이 아껴 주셨던 분이랍니다. 그 권사님도 칠십 고개를 다 넘기시지 못하고 떠나신 지가 이제 낼 모레면 일 년입니다.


딱 일주일 전 일입니다. 기도하실 때의 그 열정과 얼굴 하나 가득한 웃음 품을 때면 더욱 넉넉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몸에 쇠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염려스러운 물음을 건네었답니다. “어떠세요? 이즈음…” 장로님 대답이셨지요. “날마다 맞는 낯선 것들의 연속이에요. 낯선… 어쩌겠어…. 날마다 훈련이지… 적응하는 훈련!”




어쩌면 삶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과정의 연속 아닐까?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미’ 지나갔거나 마주하고 있는 시간들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들 사이에서 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외로움이야말로 그 훈련의 혹독한 과정의 하나일 터.




찌던 더위가 느닷없이 한 풀 꺾여 뜰에 한껏 자란 잡초들을 자르던 오후, 빨간 꽃들이 저마다 외로움을 고고한 자태로 바꿔 뽐내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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