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터가 있는 Newark시는 인구 3만이 조금 넘는 아주 작은 도시다. 델라웨어 대학교가 시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학교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주택가 거주 인구의 변동률은 극히 낮은 편이다. 대학이 있어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동시에 토박이 올드 타이머들이 느긋하게 느린 걸음으로 도시의 풍경이 되곤 하는 Newark이라는 시 이름을 나는 종종 New Ark로 부르곤 한다. 내겐 ‘새 방주’ 곧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민 이후 거의 사십 년 가까워 오는 세월을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먹고 살아왔다.
어제 나는 이곳에서 아주 낯 선 풍경을 보았다. 어제 미 전역 곳곳에서 있었던 반 트럼프 집회인 ‘No Kings!’ 시위가 이 작은 도시에서도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깜짝 놀랄 만큼 많았다, 그 많은 사람 수보다도 낯설게 다가온 것은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백흑홍황(白黑紅黃)이 두루 뒤섞인 군중의 모습은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한 목소리로 ‘No Kings!’을 외치며 도시를 행진하는 무리들에게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며 화답하는 차량의 물결들은 심상찮은 이즈음 이 땅의 앓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들을 보거나 들으며 답답해지는 때면 지난 일들을 돌아보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단위로 내가 살아온 세월들을 끊어 곱씹어 보고, 공동체 이를테면 미국이나 한국 등 나라나 민족 공동체에 관해서는 약 30년 정도 세대로 끊어 돌아보곤 한다. 사람 사는 일과 생각들 일례로 종교, 문화, 사상 같은 일들에 의문이 생겨 답답해지면 한 백 년 단위로 끊어서 지나 온 사람살이를 훑곤 하는 것인데, 그러고 나면 답답했던 마음들이 풀리거니와 내일에 대한 걱정도 절로 삭아 들곤 한다.
온종일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어둡고 유월답지 않게 낮은 기온에 비도 오락가락하는 오늘 날씨는 피터 터친이 쓴 책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기에 아주 적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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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터친이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난 국가와 사회가 정치적으로 위기에 빠지는 반복적 현상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데이터 베이스화 하여 그 요인을 찾는 작업을 기록한 책이다. 특히 오늘날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 상황을 그런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미국의 경험들을 돌아보며 내일을 조망한다.
피터 터친은 지난 사람살이(역사)를 재는 잣대로 사용한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는 시각이 주는 결론 역시 내일에 대한 긍정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제대로 지난날들을 곱씹어 오늘 행동한다면…
피터 터친이 이 책에서 몇 차례 인용한 재미있는 사람 키에 대한 이야기 하나. 한 국가가 진보적 발전을 이루는 시기에는 그 구성원들의 평균 키가 높아가고, 위기의 시대에는 평균 키가 줄어든단다. 일례로 미국이 떠오르던 시기에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까지는 미국인들의 평균 신장이 제일 컸는데, 오늘날엔 북유럽인들의 신장이 가장 크단다. 이즈음 훌쩍 커진 한국인들의 평균 신장도 그런 증명의 하나일런지.
책의 몇 구절들이다.
<국가 와해의 사례들을 차례로 검토해 보면 모든 사례에서 위기 전 엘리트 - 남북전쟁 전 노예제도에 속한 이들이든, 프랑스 앙시앵레짐의 귀족이든, 1900년 무렵의 러시아 인텔리겐차이든, -의 압도적 다수가 이제 막 자신들을 집어삼키려 하는 재앙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음을 드러난다. 그들은 스스로 국가의 토대를 뒤흔들고는 국가가 허물어지자 깜짝 놀랐다. - 199쪽>
<책의 서두에서 칼슨(Tucker Carlson; 폭스뉴스 앵커 출신으로 트럼프 막후실세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인 칼슨이 쓴 책, ‘바보들의 배: 이기적인 지배계급이 어떻게 미국을 혁명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는가’를 말함)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왜 도널드 트럼프를 뽑았는가?” 그리고는 곧바로 답을 내놓는다.
“트럼프의 당선은 트럼프와 관련된 게 아니었다. 그의 당선은 미국 지배계급의 얼굴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운 사건이었다. 경멸의 몸짓이자 분노의 고함. 이기적이고 무지한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이기적이고 무지한 결정을 내린 최종 결과였다. 행복한 나라라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나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책 267쪽>
<오늘날 미국의 지배계급은 인류의 역사 내내 수천 번 반복된 곤경에 빠져 있다.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지배 엘리트들에 대한 지지를 철화하고 있다. – 중략- 엘리트 지위를 추구하다가 좌절한 수많은 학위 소지자들이 반엘리트를 키우는 온상이다. – 중략- 대다수 자산 보유자들은 현 상태를 보전하기 위해 어떤 개인적 희생할 생각이 없다. 이런 현상을 전문적 용어로 ‘혁명적 상황’이라고 한다. – 중략 – 미국의 지배계급은 과거에 그러니까 한 세기 전에 이를 해냈다.(20세기 초 루즈벨트의 뉴딜 시기를 말함)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역사는 무엇을 말해줄까? – 책 274쪽>
<뉴딜 시기에 노동계급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2000년에 이르러 고학력 10%의 정당이 되었다. 경쟁 당인 공화당은 주로 1퍼센트의 부유층을 위해 일하며 90%는 무시해 버린다 책 292쪽>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을 밝히며 이 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중략 – 지난 일만 년간 우리는 우리는 특히 급속한 진화를 목도했다. 평민들을 억압하는 전제적 엘리트들이 계속 등장해서 거듭 전복되었다. 지금 우리는 이 순환의 해체 단계에 있는데, 우리 자신의 다툼의 시대를 살면서도 인류가 과거의 숱한 대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웠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중략 – 우리의 통치자들에게 우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복잡한 인간사회가 순조롭게 작동하려면 엘리트- 통치자, 행정가, 사상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엘리트를 없애기를 원치 않는다. 비결은 엘리트들이 만인을 위해 행동하도록 제약하는 것이다. 책 295-296쪽>
오늘은 아버지 날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지금은 내가 아버지고 할아버지다.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선다. 미안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요량으로 어제 ‘No Kings!’ 시위에서 서성거렸었다.
나는 성서의 신명기적 사람살이 관계가 옳다는 생각으로 산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그랬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