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들이야말로 이른바 초자연적인 것보다, 더 진실로 경이롭고 신비롭다.( “The natural and common is more truly marvelous and mysterious than the so-called supernatural.” - John Muir, My First Summer in the Sierra (1911))
"산이 부르므로 나는 가야만 한다." (The mountains are calling and I must go.)라는 말로 유명한 존 뮤어가 한 말입니다.
얼핏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들’이라는 말은 덧붙여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 말에는 ‘흔하고 아주 일상적인’ 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아니면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지는’ 나아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뜻들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즈음 세상 소식들을 듣고 보노라면 이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들’에 해석과 해설 또는 곱씹음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건만 자연스러움으로 치장된 것들이 차고 넘치거니와, 사람이라면 마땅히 비상식적이라고 치부해 마땅한 것들이 버젓이 상식의 탈을 쓰고 다가올 때가 너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이 들떄면 ‘에고, 내가 많이 살은 건가?’하며 이젠 어쩔 수 없는 노인네 테를 내기도 하고, ‘에이~ 이게 다 사람 사는 모습이거늘…’하며 제법 도튼 흉내를 내보곤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야 그쯤으로 그저 그런 순간들을 넘겨버리고 맙니다만, 이걸 죽자살자하고 그런 현상들과 씨름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마틴 부버(Martin Buber)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일요일인 12월 14일에 호주 본다이 비치 유대인들의 하누카 축제 집회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다시 한번 꺼내든 마틴 부버가 쓴 <신의 일식> 책장을 넘기며 들었던 생각입니다. 어제 아침 제가 사는 동네 뉴스는 동네 유태인 교회당에서 열리는 하누카 축제기간 동안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교회문을 잠근채 그 공동체 일원들만 참석하여 치러진다고 전했습니다.
호주 본다이 비치와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델라웨어는 비행기를 타고도 족히 20시간 가까이를 가야만 닿을만한 먼 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는 곳들이지만 본다이 비치에 덮쳤던 그 어두움이 여기 미국 시골 마을 유대 공동체까지 엄습한 것입니다.
마틴 부버가 1952년 <신의 일식>을 쓰던 때는 나의 모국 한반도는 죽고 죽이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전 세계는 이차세계대전과 그 전쟁통에 겪은 <홀로코스트>라는 인간적으로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 고난과 고통의 경험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고뇌하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신의 죽음’과 ‘신의 부재’를 소리치곤 하던 때였습니다. 그때에 부버는 <신의 일식日蝕>을 주창하였습니다.
<중대한 시험의 시대는 언제나 신의 일식이 일어나는 시대야. 태양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태양이 원래의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몰라. 그냥 태양이 없다고 생각하지 그런 시대에도 똑같은 거야. 신의 얼굴은 뭔가에 가려져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를 비춰주는 것이 없으니 온 세상이 차갑게 식어 버릴 것만 같지. 하지만 진실은, 바로 그때야말로 위대한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때라는 거야. 그거야말로 신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거지.>
바로 <가리움>입니다. 신과 나 사이를 ‘가르는’ 그 무엇이 태양이 없어진 것 같은 어두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위대한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 가리움에 대한 이야기는 존 도미닉 크로산이 말했던 ‘브로커 없는 나라’ 이야기로 이어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제가 뭘 안다고 거기에 한 숟가락 어설픈 언설을 얹겠습니까?
다만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 곱씹어보는 것이지요. 그저 ‘흔하고 아주 일상적인’ 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아니면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지는’ 나아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제 주변의 아주 작은 일들에서 일식日蝕을 거두어낸 신의 모습을 만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제가 받은 연말 안부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올해 우리 이민자 커뮤니티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헤어질까 두려워 밤잠을 설치고, 평생을 바쳐 일군 가게를 잃을까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정책과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많은 이웃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깊은 회복력과 사랑, 그리고 서로를 향한 공동체 돌봄의 정신을 확인했습니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두려움을 넘어 함께 조직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의 생계를 지키는 일에 나섰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변화는 반드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우리 센터 https://www.wooricenterpa.org/>에서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그이들은 한인 및 아시안계 이민자들과 약자, 소수자들의 권익옹호와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른 아침 상쾌한 아침 공기와 경쾌한 새소리들보다 먼저 눈과 귀를 향해 다가오는 것들은 아주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 세상 소식들일 때가 더욱 많은 이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가 서 있는 곳이 살만한 세상인 까닭은 ‘아주 작은 일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람다운 상식’으로 하루 해를 보내며 감사로 신과 마주하는 셀 수 없이 숱한 이웃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큰 것을 보려고 애쓰지만, 사실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작고 평범한 것들이 가장 경이롭다. (The natural and common is more truly marvelous and mysterious than the so-called supernatural")”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