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인치 온다는 일기예보에게 상이라도 내리듯 5인치가량의 눈이 쌓였다. 지난해 겨울, 내린 눈을 치우다가 단지 삐끗했을 뿐인데 며칠을 고생했던 일이 생각나 무릎과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 두루고서야 눈삽을 들었다. 지난겨울 그날 이후 가정용 제설기를 사야겠다는 마음은 일 년 여가 지난 오늘까지 그저 생각뿐이다. 어쩌면 생각만으로 끝날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일요일 아침이라 서두를 일이 전혀 없었다. 쉬엄쉬엄 몇 삽 뜨다가 땀이 날만하면 커피 한 모금 입에 담고 눈구경하기엔 기계보다는 역시 삽이 제격이다.
따지고 보니 눈 치우는 일만 아니라 이즈음 내 삶 역시 서두를 것이 아니었다. 급하게 쫓아가야만 하는 일도 딱히 없거니와 다급하게 나를 내어 밀어내는 일상을 살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이래로 아내와 내가 틈나면 집을 보러 다녔던 일도 큰 숨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올 겨울을 넘겨야겠다.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으로 나섰던 집 찾아보기였다. 눈 치우는 일만 해도 그 생각은 옳았다. 아직은 눈삽으로 눈을 퍼 담을 힘이야 넘쳐나지만, 어느 날인가 제설기를 사용한다 해도 그걸 밀고 다닐만한 힘조자 떨어질 날은 분명 멀지 않아 다가올 것이다. 다음 선택할 수 일이란 누군가 남의 손을 빌리는 일뿐이다.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의 시작이었다. 하루 온종일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내 그림자보다도 짧아지는 그날까지 아내나 나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집에 대한 꿈이었다.
그 꿈은 분명 욕심이지만 노년을 맞이한 내 간절한 기도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이 기도도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천천히 지난 기도들을 뒤돌아 되새겨 볼수록 신이 내 기도를 이루어 주신 적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또다시 드려보는 우리 내외가 마지막 살 집에 대한 기도이다.
이렇게 올 겨울은 꿈만 품고 넘어갈 터이고, 어쩌면 내년 겨울 어느 날 아침에도 여기서 내린 눈을 치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여도 언제나 그랬듯 내 기도는 계속될 것이다.
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보다 기도를 품고 드릴 때의 모든 과정들 속에서 느껴왔던 내 감사의 크기가 비교하지 못할 만큼 훨씬 크다는 내 믿음 때문이다.
아내가 단호박과 바나나, 두부를 으깨 넣은 와플로 아침상을 차렸다. 어제 두 돌을 맞은 손녀 사진을 보며 이어지는 것은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