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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서생 May 28. 2023

의대가 최선입니까 당최

의대 쏠림 현상 

1. 이공계 기피 현상 


KISTEP에 입사한 때가 2006년이다. 당시 맡았던 업무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예산을 조정하고 배분하는 일이었다. 미시적으로는 사업 별로 정부 예산이 얼마씩 투자되는 것이 적정한 지 분석하였다. 거시적으로는 과학기술계에서 해결해야 할 이슈를 정리하고, 관련된 사업이 무엇이 있으며 예산 투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할지 분석하였다. 이슈는 새로 등장하고 사라지고는 했는데, 단골손님처럼 늘 끼어있던 이슈도 있었다. 그런 이슈 중 하나가 '이공계 기피 현상'이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이공계 기피'로 뉴스 검색을 실시했다. [그림 1]의 파란색 선에 해당되는 결과를 보면, 2002년도에 이공계 기피 현상과 관련된 뉴스가 1,593건이었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자연계 대학의 입시 경쟁률이 인문사회계 및 예체능계에 비해 낮았으며, 많은 대학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촉발시킨 요인은 IMF 외환위기이다. IMF 사태 이후 출연연구기관과 기업에서 구조조정 대상 일 순위로 과학기술자들을 먼저 실직시켰다. 직업의 불안정성과 열악한 처우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당시에는 경제적 처우뿐만 아니라 이공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가령 이공계는 감정이 메말라 있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워커홀릭이라는 오해와 편견이었다. 

     

[그림 1] '이공계 기피', '이과 선호', '의대 쏠림' 키워드 별 뉴스 기사 건수 (출처 : 빅카인즈)


2. 이과 선호 현상 


2013년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할 때까지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공계 기피라는 표현은 사라졌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내놓은 수많은 대책의 효과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문과보다는 이과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7~8% 수준이던 청년실업률이 2014년 9.0%에 올라서더니 급기야 2015년 2월 11.1%까지 찍었다. 극심해진 취업난의 공포는 그나마 취업이 용이한 이공계로 학생들이 몰리게 만들었다. [그림 2]에서 보면 '이과 선호(녹색 선)' 기사 건수가 '이공계 기피(파란색 선)' 기사 건수를 2016년 이후 역전했다. 이 즈음부터 문과생을 비하하는 문돌이라는 표현이 나타났다. 인문계를 나와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사라진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 이과 선호 현상은 고등학생을 넘어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도 이어지고 있단다. 코로나 사태는 비대면 전환, 즉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기업은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면서 문과생보다는 이과생 선호가 더 뚜렷해지면서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은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그림 2] 최근 10년 '이공계 기피', '이과 선호', '의대 쏠림' 키워드 별 뉴스 기사 건수 (출처 : 빅카인즈)


3. 의대 쏠림 현상 


20년 전 학과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이과 선호 현상은 과학기술계로써는 고무적인 일이다. 정부는 '반도체 인재 15만 명 양성'과 같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의 인재를 양성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초・중・고 학생들의 이과 선호 현상은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 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할 법하다. 그러나 현실의 과학기술 핵심인재 확보 신호등은 결코 파란불이 아니다. 원인은 '의대 쏠림'이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올 해의 반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의대 쏠림과 관련된 기사 건수가 410건으로 급상승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졸업 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의 취업 보장이 약속된 반도체 학과의 2023학년도 합격자가 의대 진학을 위해 등록을 포기한단다.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의 추가 합격자 수는 73명으로 모집정원 47명의 155.3%였다.       


우수 이공계 인력의 의대 쏠림의 원인 중 하나는 '비슷한 시기의 의사 월급에 비해 이공계 석박사의 처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머니투데이 기사(2023년 3월 1일)에 따르면 '4대 과학기술원 석·박사가 정부출연연구기관 입사할 경우 초임 연봉은 평균 4000만~5000만 원 수준이고 억대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평균 10~15년이 소요된다. 같은 기준으로 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 최소 10년이 걸리는 의사 평균연봉은 2억 3,070만 원'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원 박사면 의사 친구 못지않게 공부 잘했을 텐데,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이 꽤 클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 자연대와 공대에서 정원을 못 채우던 시절에도 의대, 치의대, 한의대의 등록률은 매우 높았다.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정부와 언론에서 덜 부각했던 것뿐이다.  

 



지난 20여 년 간 이공계 인력 관련 사회 현상을 관통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진로와 관련된 변하지 않는 현상 하나. 적성보다는 취업률이 우선이다. 

과학기술계에 변하지 않는 현상 하나. 갖은 지원 정책과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 인력은 늘 부족하고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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