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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Jun 22. 2018

북한의 변화는 강력한 제재 정책이 먹혀든 결과일까

[북앤톡]미국민중사를 읽고

소련이 무너진 것은 미국과의 군사력 경쟁에 지쳐버린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레이건의 강경 노선이 냉전을 종식시키고 미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많이 본 것 같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도 전방위 제재의 결과라는 시각도 많이 눈에 띈다.


북한도 버티는데 지쳐서 태도를 바꾼 것이고, 그동안 미국과 한국 보수파의 노선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대화에서 성과를 낸 것도 결국 그동안의 강경노선 덕분이라는 시선도 종종 엿보인다.


진보적인 역사학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를 보면  레이건 대통령의 대소 강경 정책은 소련의 붕괴를 앞당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련의 자유화를 가로막은 장애물이었다는 의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레이건의 강경노선과 군사지출 증대가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화는 훨씬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1993년 스탈린의 사망과 특히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이끄는 지도부가 등장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당시부터 주목할만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됐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 대사를 역임한 조지 케넌에 따르면 미국의 계속된 강경 노선은 더 이상의 자유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냉전 극단주의의 전반적인 효과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소련을 압도한 거대한 변화를 촉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지연시켰다." 미국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소련의 붕괴에 환호성을 질렀지만 케넌은 미국의 정책이 이런 붕괴를 지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끔찍한 희생을 야기하면서 냉전 정책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책을 보면 미국에서 소련은 전략적으로 필요한 상대였다.


유럽,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시아에 대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사원조는 소련으로부터 나오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국 시민들은 거대한 핵 비핵 무기와 세계 전역의 군사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이라는 형태로 수조 달러를 지불해왔었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도 소련의 위협으로 정당화됐던 것이다.

과거에는 의혹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이제 미국의 대외 정책이 단지 소련의 존재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동기를 갖고 있음이 분명해지게 됐따. 급진적인 사회 비평가인 노엄 촘스키는 안보에 대한 호소는 대부분 사기극에 불과한 것으로서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냉전이라는 틀을 채택한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하고 있었다.

소련이 없어진 상황에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다른 상대를 필요로 했다.

중앙정보국은 이제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필요함을 입증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인공위성과 산더미 같은 기밀 서류를 가진 중앙정보국과 소수의 자매기관들은 냉전의 적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어째튼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클린터 재임기 동안 정부는 계속해서 연간 2500억달러 이상을 국방 부문에 지출했다. 1989년에 소련이 붕괴했음에도 클린턴은 미국이 두개의 국지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989년 당시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 딕 체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위협은 너무 먼곳에 있어서 식별하기 조차 어렵게 됐습니다." 콜린 파월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악마들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악당들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이제 카스트로와 김일성을 표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합의 아래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지친 북한이 이제 그만하자고 먼저 백기를 들었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합리적인 추측일까?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제재가 먹혔다는 논리에 고개가 바로 끄덕거려 지지는 않는다.


미국민중사를 읽고 나니 미국이 다른 상대를 다루기 위해 그동안 악마로 취급한 상대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나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의 대화를 원했고, 성과가 없었던 것은 미국이 차갑게 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쿠바와 북한이 아닌 미국에게 이제 새로운 적수는 누구일까? 중국과 러시아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 중국과 러시아의 강화되는 협력 분위기 모두 새로운 파워 게임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 아닐런지... 그리고 새로운 파워 게임을 준비하는 미국으로선 중국과 러이사에 가까운 북한을 미국쪽으로 어느 정도 돌려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아래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선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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