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번역전쟁을 읽고
책을 읽을 때 짜릿한 순간 중 하나는 나의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는 저자의 생각을 접할때다. 나와 생각이 다른게 아니라, 나와는 다른 저자의 생각에 내가 공감하게 되는 상황은 정신적으로 흥분이 되는 일이다.
소유의 종말 등을 번역한 이희재씨가 쓴 번역 전쟁도 그런 책중의 하나가 될것 같다. 지난번의 포스트에 이어 번역전쟁을 읽고 충격으로 다가온 스토리들 몇개를 추가로 소개할까 한다.
우선 징병제와 모병제에 대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징병제보다는 모병제가 합리적이라고 보는 쪽이다. 그런데 저자는 징병제가 인류에게 나은 제도로 보른 것 같다. 모병제가 늘수록 전쟁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는 프랑스 혁명이 낳은 국민군이 보여주듯이, 침공의식이 아니라 방어 의식의 산물입니다. 옛날 유럽의 왕들은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용병을 뽑아서 약탈전쟁을 하고 그 전리품으로 은행빛을 갚았습니다. 방어 목적이 아니라 수탈과 약탈 목적의 전쟁이었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모병제였습니다. 모병제는 약탈전의 산물이고, 징병제는 방어전의 산물입니다. 약탈 전쟁을 벌이는 공격 수단이었던 모병제가 약탈전쟁에 맞서는 방어 수단이었던 징병제보다 선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는한 미국의 전쟁 동참 압박에 맞서는 데에는 모병제보다 징병제가 유리합니다.
미국과 영국처럼 타국을 자주 침공해온 나라는 모병제가 위험합니다. 징병제를 해야 빈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전쟁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를 견제할 수 있으니까요. 안그러면 없는 집 자식들만 군대에 가고 그들의 죽음은 가난한 부모의 상실감으로만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은 전쟁에 갈 위험성이 없는 안전한 후방에서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 애국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이비 애국자를 양산합니다.
징병제 폐지는 한국의 젊은 유권자가 반길만한 공약이지요. 군대에 간다고 해서 대학 등록금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취업에서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고 기합을 받고 욕을 먹기 일쑤인 한국 현실에서는 단비와 같은 정책입니다. 그러나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으로 더 쉽게 끌어들이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아프간에서 죽은 영국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18세 밖에 안된 앳된 젊은이가 이역만리에서 죽어나갑니다.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은 잠시 숙연해지지만 대부분의 영국인에게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의 운명은 나의 운명과는 무관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주장이다. 닉슨이 악역으로 봤는데 저자 입장은 거꾸로다. 닉슨은 CIA 공장의 희생자로 묘사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CIA를 앞세워 상대당의 선거전략을 알아내려고 도청장치를 해놓고는 협의를 부인하다가 CIA를 통해 FBI에에 수사 중단 압력을 넣자는 백악관 비서실장의 건의를 수용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발견되면서 불거졌지요. 이 사건은 불명예 퇴진한 거짓말쟁이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낸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 대부분 알고 있지만 정말 그럴까요. 케네디 대통령 이후로 대통령 집무실에서 오가는 모든 공식 대화는 녹음기로 기록되었고 닉슨도 자신의 발언이 기록에 남는다는 걸 알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비서 실장은 수사 중단 압력을 넣자는 건의를 하기 앞서 닉슨 대통령에게 FBI 부국장이 FBI의 중간 수사 결과 CIA가 개입한 흔적을 발견했음을 CIA 국장에게 전화로 통보했다고 보고합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외면한 내용입니다.
닉슨은 대통령 취임 초반부터 CIA, 군부와 줄곧 싸웠습니다. 닉슨은 베트남전쟁 종식을 위한 교섭, 대중국 대러시아 관계 개선 등 애외 문제에서는 유연하게 나갔고 마약 등 국내 문제에서는 강력하게 나가면서 CAI와 군부의 불만을 샀습니다.
도청 사건은 닉슨은 옭아매려고 CIA가 친 덫이었습니다. '흑마일가'에 따르면 CIA를 통해 FBI에게 압력을 넣자는 건의를 창안했으면서도 나중에 법정에서 닉슨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법률참모는 CIA가 일찍부터 박아놓은 대통령 감시자였습니다.
9.11테러와 관련한 부분은 미국이 테러를 유도한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꽤 풍긴다.
많은 한국인이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있는 나라여도 자국민의 목숨을 지키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 점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미국이 온 세계인에게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퍼뜨린 믿음일 뿐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허구에 불과합니다.
올라 투난더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그해 봄과 여름부터 FBI와 CIA를 비롯해서 수많은 미국 일선 정보기관요원들이 알카에다에 의해 의한 비행기 건물 공격 테러를 경고하는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구체적 일자와 건물 이름까지 적시한 보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고는 철저히 묵살되었습니다. 19명의 비행기 납치범은 사우디 제다의 미국 영사관에서 미국 입국 비자를 받았습니다.
마이클 스프링먼 영사는 비자발급을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상부에서 지시가 와서 비자를 발급해주었다고 나중에 진술했습니다. 테러를 앞두고 다수의 국무부 관리를 비롯해서 고위 공직자들이 항공 안전을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취소했습니다.일선 첩보원들이 힘들여 수집한 정보도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 쓰이지 못하는한 그 나라는 두뇌 국이 될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나 많이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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