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light Oct 14. 2018

"자유무역질서는 결국 미국이 해체할 것이다"...왜?

[북앤톡]21세기미국의패권과지정학을 읽고


"세월이 지나면 내가 틀렸다는게 증명될 거라고? 2040년에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내게 연락해라. 그때 다시 얘기하자. 그때면 내 나이가 예순 여섯인데, 아마 베이비품 세대 뒷바라지 하느라고 때늦은 은퇴를 학수고대 하고 있을게다. 날찾아올때는 구미 당기는 술 한 병 사들고 오시길."



미국 국무부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피터 자이한이 쓴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책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음을 딱봐도 알 수 있는 표현이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책의 마지막에 저런 문장을 남겼을까?  책의 핵심 메시지는 지정학과 인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세계를 떠받치는 자유무역질서는 종말을 맞이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유무역의 리더 미국에 의해서.



세계화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자유무역이라는 질서를 스스로 해체할 것이라는 것은 지금 상황에선 쉽게 예상하기 힘든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술한병 사들고 오라는 말을 남길만도 하겠다. 


그럼에도 저자는 인구학과 지정학의 관점으로 봤을 때 미국은 세계의 맏형 노릇 하기 보다는 적당히 인연 끊고 혼자 지내는게 자기들이 잘먹고 잘사는데 유리하다면서 미국이 전세계적인 자유무역 질서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전, 고립주의를 펼치던 시절도 되돌아갈 것이란 얘기다.


2008년 현재 미국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4%다. 이 가운데 3분의 1인 약 5퍼센트가 에너지다. 지난 6년 동안 셰일은 이 5퍼센트를 절반 정도 줄였는데, 이 수치는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어 결국 0이 된다.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의 또 다른 3분의 1은 북미 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이 차지한다. 결국 미국의 총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 이하가 된다. 
미국은 앞으로 세계 에너지 안보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 에너지 자체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게 된다. 미국은 세계 무역 사슬의 안보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 주역 자체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게 된다. 미국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단 한가지는 자국에서 해외로 가는 운송 경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셰일과 3D프린팅 같은 기술에 힘입어, 운송이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미국은 나머지 세상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실제로 미국에게 필요했던 것도 1946년부터 2014년까지의 기간 동안 미국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는 완전히 별개다. 미국에 세계로부터 필요한것도, 세계에 대한 관심도 없다면, 세계 질서를 다른 나라들에 강요할 필요도 없다.


현체제에 닥쳐오고 있는 위기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세계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모든 것-에너지 공급 시장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에서부터 미국 시상에 생산품을 판매할 수 있는 능력,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르기까지- 은 미국이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브렌트우즈체제를 유지해온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다. 그러나 미국은 이 체제에서 더 이상 전략적 이득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도 체제 유지 비용은 여전히 부담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 가서-다음주가 될지도 모르고 10년후가 될지도 모르지만-미국이 자국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게 되면 브레튼우즈 체제의 근본원칙과 자유무역질서의 기반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혼란은 커질수 밖에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이 해외 이해 관계 측면에서 관심을 갖는 몇개 국가 빼고는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펼쳐진다.


개입하지 말자가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기조가 된다. 무역 관계는 시들해진다. 미국은 세계 운송 경로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다. 미국은 동맹국들이 쇠퇴하도록 내버려둔다.오랫동안 미국의 보호를 받고 사는데, 익숙해진 나라들은 이제 스스로 전기를 확보하고 국민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국경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실력이 녹슬었에 문제다. 미국의 안보 우산 때문에 얌점히 지냈던 나라들은 이웃나라를 상대로 마음껏 도발을 하게 된다.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들 극소수를 제외하면 미국이 국제 사회와 교류하는 일차적인 수단은 특수 군과 원정 가능한 해군이 된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미국은 자국이 위협으로 인식한 대상을 신속하게 정밀한 공격으로 제거하거나 미국의 눈밖에 날만큼 현명치 못한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거의 모두 북미 지역에 단단히 자리잡고 이있기 때문에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헤 했던 역할로 되돌아 가게 된다. 바로 세계에 무관심한 세계적 강대국의 역할 말이다. 더 이상 한국의 비무장 지내를 지키지도 않고, 카타르에 있는 기지도 철수하고 독일의 체크포인트 찰리를 지키는 일도 없어진다. 항로 순찰도 하지 않는다. 그냥 미국은 넓은 세상에 신경을 끄게 된다. 


인구학 측면에서도 미국은 아쉬울게 없다. 


미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Y세대처럼 인구 구조를 역전시키는 세대가 존재하는 나라다. 선진국 진영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미국의 베이비품 세대에 해당하는 세대가 자녀를 많이 두지 않았따. 자기 세대를 대체할 만큼도 낳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재정적으로 고난의 시기가 2030년이면 끝나지만 나머지 지역은 은퇴자와 납세자 간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세대가 어릴 수록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경제성장은 점점 둔화되는, 이전과 다른 없는 또 다른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제외한 선진국 진영은 만성적인 자본 빈존과 지속적인 경기 침체가 일상화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장의 둔화에다가 Y세대가  인구 구조를 정상화하는 미국의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볼때 빠르면 2030년이면 미국은 자본이 풍부한 유일한 나라, 경제가 성장하는 유일한 나라, 시장이 성장하는 유일한 나라로 부상하게 된다. 미국이 인구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정책을 일부러 실행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된다는 뜻이다. 


책에 따르면 미국과 이해관계를 갖게 되는 멕시코 같은 몇몇 나라들 빼고 많은 국가들의 미래는 대체로 어둡고 불확실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에 대한 접근이 막히고 고령화의 타격을 받으면서 개고생할 가능성이 크고, 일본은 먹고사니즘을 위해 다시 다른 나라, 특히 중국을 침략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유럽 연합의 해체는 예정돼 있다. 경제강국 독일의 미래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애매하게 표현됐다. 좋은 뉘앙스는 없었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정학과 인구학적인 논리를 앞세워 미국의 시대는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정학과 인구학이라는게, 다분히 결정론적인 프레임인지라, 알고도 어찔수 없는게 많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결국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타격을 덜 받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미국에 잘보이는 것이다. 미국과 이해관계를 맺도록 국가 전략을 짜는 것이다. 


21세기미국의패권과 지정학은 흥미롭고 도발적이면서도 한국 사람인 이상, 불편한 대목이 적지 않은 책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독자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이걸 대비해 저자 술한병 들고 와서 얘기하자것으로 책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국가 관계에서 지정학 중심의 접근법의 약발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예전과 비교해서 중량감이 크지 않다는 얘기도 많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