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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Nov 10. 2018

핵실험할때 이미 북한을 뒤흔든 아래로부터의 시장 경제

[북앤톡]햇볕장마당법치를 읽고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엔 비공식 시장인 '장마당'이라는게 있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종종 듣기는 했어도 국가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거란 생각을 못했는데... 이종태 시사인 기자가 쓴 햇볕 장마당 법치를 읽으니 북한은 이미 장마당으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가 국가 시스템의 체질까지 바꿀 만큼의 위상을 확보한 것 같다. 


책이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출간됐음을 감안하면남북 정상이 3번이나 만난 지금은 시장의 힘이 세졌으면 세졌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개방 의지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북한은 시장의 힘이 커지고 있던 상황이다.


아래로부터의 시장 경제는 고난의행군으로 부터 시작됐다. 국가가 먹을걸 챙겨줄 처지가 안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파는 암시장 성격인 장마당이 등장했다.

장마당은 북한 전역으로 확산됐고 실질적인 국가 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국영기업들도 장마당을 통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처음엔 오직 생계를 잇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었던 북한 인민들 중 일부는 좀더 많은 불품을 계획적으로 갖고 오면 팔아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보따리상이다. 이로써 생계를 잇기 위한 교환이 수익을 얻기 위한 교환으로 도약하게 된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인의 탄생이다.  광범위한 미공식 부역이 이렇게 이뤄졌다. 어떻게 보면 중국에서 넘어온 밀무역 상품들이 북한의 시장과 자본주의를 극격히 발전시키는 촉매제로 적용하게 된다.
북한의 1990년대는 국가경제의 주도권이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자생적 시장으로 서서히 넘어가던 시기였다. 심지어 국영 기업소들도 농민시장이나 장마당에 의존하게 된다. 북학경제전문가인 이영훈 박사의 논문 '북한의 농민시장'에 따르면 의존의 경로는 대략 두가지였다. 첫째 국영 기업소가 생산품 중 일부를 농민시장에 몰래 팔아 현금을 얻었다. 둘때 소속 노동자들에게 기업소엔 적만 걸어놓고 실제로는 장사를 하도록 허용한 뒤 수익금 일부를 바치게 했다. 국영기업소측이 이런 방식으로라도 현금을 마련해야 했던 이유는 국가로부터 원자재와 중간재, 엔어지 등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불법적으로라도 현금을 마련해서 중간재 등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공장을 겨우겨우 돌릴 수 밖에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단지 시장 경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씨앗으로 불러야할 현상이 북한에서 나타난다.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얻기 위한 생산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자들이 최근의 북한 경제에서 사실상의 민간 자본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민들은 이들을 돈주라고 부른다.
결국 북한 당국은 7.1조치에서 8개월여가 흐른 2003년 3월 암시장을 사실상 합법화한다. 인민들이 자유롭게 물품을 사고팔 수 있는 종합 시장이란 합법적 거래소를 개설해준 것이다. 획기적인 조치였다. 시외버스 사업 역시 사실상 개인 기업화되었다. 보통 2인 1조로 돈을 모아 중국산 버스를 매입한 다음, 시도 인민위원회 운수 사업소 소유로 등록시킨 뒤 영업한다.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세금 및 국영 기업 명의 사용료로 인민 위원회에 납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 부문의 영향력 확대는 국가 경제 시스템의 DNA까지 바꾸는 양상이다. 국영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자본주의 국가 기업들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존 국영기업소의  지배인은 중앙에서 지시받은 만큼 만들어 다른 공장이나 국영 상점에 공급하면 임무를 완수한 것이었다. 즉 계획 목표량만 달성하면된다. 그러나 7.1조치로 국영기업에 대한 평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매인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평가점수가 낮으면 지배인 자리에서 쫗겨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배인은 어떻게든 생산 비용을 줄이는 반면 제품 생산은 늘려 수익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한 사실상의 시장주의적 기업 경영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독립채산제도 강화했다. 각각의 기업소가 자기 책임하에 운영을 해가라는 이야기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기업이 손실을 내도 사실상 국가가 책임졌다. 국가 재정으로 기업의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 즉 기업의 채산이 독립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독립채산제에서는 해당 기업소 구성원들이 생산 실적에 책임을 저야 한다. 손실을 내면 지배인고 노동자들의 보수를 줄이거나 다른 직장으로 내보낼 수 있다. 반대로 수익을 내면 이전처럼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투자되거나 임금이 인상될 수 있다. 최근 북한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보면 노동자 복지 수준이 굉장히 높은 공장들이 등장한다. 생산을 늘리는데, 성공한 대가라고 선전한다. 이처럼 일해서 성공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는, 시장 주의적 요소가 크게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보면 북한은 공개적으로 핵실험을 하고 있을때도 경제 구조는 시장의 힘이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시장의 개념을 적용한 정책을 확대하고 있었다. 남북 정상 회담 이후 북한이 대외 개방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도 180도 정책 전환이 아니라 기존에 하던 일에 속도를 좀더 내는 성격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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