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나온지 한참 됐지만 이제서야 15권을 모두 읽은 로마인이야기.
객관성과 관련해 저자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만만치 않지만 고대 유럽 역사에 대해 까막눈을 면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의미있었던 책이라 평하고 싶다.
고대 로마는 말기만 빼면 국가 시스템이 동양의 왕조 국가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왕정과 공화정 그리고 제정을 거치고, 제정 말기에는 동양의 전제 군주 국가에 가까워지지만 큰틀에서 보면 법률, 세제 등 근대 국가 운영 시스템의 뿌리가 로마에서 많이 발견된다.
직접 선거는 아니지만 시민권자들의 의견이 거버넌스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황제가 죽은 뒤 그의 부하가 황제가 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황제가 부하들에 의해 살해되는 이들도 자주 벌어졌다. 황제가 살해되면 새황제를 뽑으면 그만이었다.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릴 때는 황제가 4명씩이나 되던 시절도 있었다. 세습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권력 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로마 제국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친 한국 역사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로마인이야기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가 말년에 기독교 중심 국가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같아, 관련 내용을 공유한다.
로마는 출발부터 다신교 체제였다. 로마인들에게 신은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였다.
인간이 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신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았다. 황제도 죽으면 신격화되었다. 어떤 신을 믿는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로마는 속주에서도 토착민들이 원래부터 믿고 있던 종교를 존중했다.
이런 체제인 로마에서 3세기 이후 기독교가 빠르게 확산되고, 이후에는 국교로 승인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일신교인 유대교는 팍스 로마나 체제에서 마이너에 불과했는데, 기독교가 로마인들을 빠르게 파고든 이유는 무엇일까?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요약했다.
"남이 믿는 신까지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모습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진 로마인에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 것은 로마의 신들이 설 자리를 잃고 지쳐서 인간을 지켜줄 힘을 잃어버렸다고 로마인들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의 신은 강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과 신의 자리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고대에는 신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시오노 나마미에 따르면 3세기부터 잦은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고, 먹고 살기도 팍팍해지면서 종교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다.
"팍스로마나가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시대의 로마인에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필요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가 죽은지 200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매혹되는 로마인이 늘어난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에게 살아갈 길을 지시하는 것이다. 반면에 로마의 신들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인간을 옆에서 도와주는 존재다. 절대신과 수호신의 차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이 차이가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확신을 잃어가고 이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른 방향을 걸었던 것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로마 제국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도의 생활 방식에 비하면 기독교회의 유연성에는 그저 경탄할 수 밖에 없다. 맨위에 있는 것은 유일신이라는 조건을 붙여 현세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력의 세습까지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기독교가 결국 권력자 계급에 받아들여진 첫번째 요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외에도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가진 정치적인 의도도 기독교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로마와 기독교에 대해 정리하다 보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당시 로마의 영토는 지금의 지중해 인근 중동 국가들까지 포함했다.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은 상대적으로 이쪽 지역에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지금 이슬람교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다음에 읽을 책은 이와 관련한 주제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