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을 영어 약자로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영어로 바꾸니 그럴듯해 보이는 회사들도 있지만 왜 그렇게 바꿨지 싶은 곳들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동부가 DB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IT에 친숙한 입장에서 DB는 동부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의 DB로 많이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어로 된 사명을 영어로 바꾸는 곳들이 늘었지만 이게 과연 괜찮은 브랜딩 전략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예술 전문 저널리스트인 김신 씨 사회로 광고 전문가 박웅현 TBWA 크리에이티브 대표(CCO), 디자인 전문가인 오영식 토팔임팩트 대표가 진행한 대담집인 일하는 사람의 생각을 보면 요즘은 오히려 한국적인 회사 이름이 잘 통할 수 있는 분위기처럼도 느껴진다.
김신 씨는 이렇게 화두를 던진다.
한국의 기업 중에는 SPC그룹을 눈여겨 볼만한 거 같아요. 이 회사는 삼림 빵으로 유명했는데, SPC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삼립빵 하면 보름달 빵 같은 것만 연상되는데 대기업 구조로 변하면서 삼립빵의 이미지가 완전히 없어진 거지요. 이런 경우는 성공한 거 같아요.
이에 대해 박웅현 COO는 그렇게 보기 힘든 사례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의 반대축도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SPC가 삼립&샤니, 파리크라상 컴퍼니의 앞글자를 따서 SPC로 한건 잘한거 같아요. 기업의 이름에 대해 고민한 건 알겠는데, 그 반대 사례도 꽤 많습니다. 한때의 유행에 휩쓸려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전통적인 힘을 놓쳐버리는 경우도 진짜 많지요. 덴스라는 일본의 오래된 광고 회사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전보통신의 줄임말인데, 약간 올드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름을 안바꿨거든요. 한국을 보면 삼성은 그런 헤리티지를 지켜가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전력을 예로 들어볼게요. 지금 한국해 보면 한국이라는 단어와 전력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파워가 엄청난 이름이에요. 그런데 한국 전략의 영어 이름을 줄인 명칭인 켑코(Kepco)는 한국전력이 주는 아우라를 전혀 받아가지 못합니다. 주택공사도 한때 영어가 유행하던 그 시대를 조금 견뎌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택공사라는 이름이 주민들에게 더 큰 믿음을 주었을 텐데, LH가 되었거든요. 남양알로에 다 기억하시지요? 바뀐 이름이 유니베라입니다. 바꾼 지가 거의 10년이 넘었을 거에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한때 영어 이름을 쓰는 게 유행이었죠.
은행도 국민은행이 KB로 바뀌었고 대구은행은 DGB, 동부는 DB가 되고…. 그런데 요즘은 또 레트로가 유행이잖아요. 이제는 영어보다는 '바르다 김선생' 같은 브랜드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지요. 너무 섣부르게 영어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손해를 보는 브랜드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기업들이 영어로 회사 이름을 바꾼 것은 한국어로 된 이름이 글로벌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김신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는 한때 이상하게도 한국말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이름에 캐슬을 붙이는 경우가 그렇죠. 왜 그렇게 하는지를 물으면 영어식으로 붙여야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거에요.
박웅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들의 대중의 수준이 그러니까라고 판단하는건 무성의한 것 같습니다. 대중의 수준이라는게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고요. 제대로만 설명이 되고 제대로만 이해가 된다면 사람들은 좋은걸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광고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말, 콤플렉스가 생긴 말이 "이 광고 너무 어려워요" 였거든요. "대중은 그런걸 원하지 않아. 그냥 유행어 하나 만들면 돼. '맞다, 게보린' 같은거. 이렇게 그냥 떠오르면 되는거지. 그녀의 자전거가 어쩌고 사람을 향합니다가 어쩌고, 무슨 철학책 쓰느냐?
대중과 광고는 그런 거 기대하지 않아"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맞다 게보린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사람을 향합니다에도 반응을 보였거든요. 그래서 대중의 수준 때문이라거나 사람들이 영어를 좋아해서라는 이유는 너무 무성의한 대답 같아요. 농협이 NH가 될 이유가 없고, 수협이 SH라고 이름을 달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저는 우리의 고유한 한국 이름들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거기에다 전문가들이 옷을 제대로 힙쳐주면 이건 아주 단단한, 말하자면 500년 종가 같은 느낌이 있을 텐데, 잠깐 외국물을 먹고 온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는 거죠. 피로도가 쌓여서 그렇다고 봅니다. 영어 피로도가 엄청나게 쌓여 있어요. 그게 지금 곳곳에서 보입니다. 바르다 김선생, 을지로에 있는 신도시라는 술집, 대림창고 등 곳곳에서 보여요. 젊은 세대들은 이런 게 신선한 거죠.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외국에서 들어온 건 거의 다 피로도가 쌓였고 새로운 게 열리기 시작할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줘야 할 것은 우리 것에 주목해서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줬던 바로 그런 작업이겠지요.
광고 뿐만 아니라 로고나 패키지 디자인 같은 경우도 너무 바뀌는데, 이에 대해 박웅현 COO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게 좀 전략적이지 않은 거지요. 아이보리 비누의 로고는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같지는 않지만 아이보리를 쓰는 사람들은 할아버지 때 쓰건 것과 내가 쓰는 것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건 디자인계에서는 유명해요. 코카콜라 로고는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변화를 크게 눈치채지 못하죠. 변화는 이렇게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 까치였다가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로 바뀌고 그러면 가치가 생기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