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면서 자동차를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로 보는 시선도 늘었다.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 테슬라가 자동차의 아이폰으로 통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보는 이들도 많지만 자동차와 스마트폰은 근본적으로 DNA가 다른 하드웨어여서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니더마이어가쓴 루디크러스에서도 이같은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다루는 것이 가져올 리스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일단 스마트폰을 닮은 자동차의 놀라운 요소를 넘어서서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면 이 모든 아이디어들이 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 새로운 기능과 꾸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자동차의 명백한 개선처럼 보이지만 자동차를 사소한 버그나 결함에 취약한 스마트폰처럼 만들 수도 있다. 웹사이트가 다운되거나 휴대폰을 재부팅하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만약 운전 중인 차량의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재부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최소 기능 제품을 출시한 이후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하는 것은 안전이 가장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와 스마트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이 새로운 기술과 부품을 사용하기 위해 몇 년 이라는 시간 동안 검증을 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근본적으로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도로에서는 매년 125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 이같은 수치만 생각해봐도 자동차 회사들이 왜 고객을 태우고 신제품 베타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운전의 내재적 위험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보이기 위해 버튼과 노브를 완전히 감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다르게 자동차의 제어장치를 실제로 보지 않고 조작하는 것은 생사를 갈라 놓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버튼과 노브를 없애면 자동차 회사들은 비용을 절약하고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떼도록 만드는 인터페이스를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중요한 강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여전히 높은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만든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동차는 스마트폰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과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스마트폰이 하는 것과 동일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으로 만드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면 테슬라는 왜 이렇게 성공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자동차는 유선형 특급열차에 영향을 받았고 1950년대 자동차는 전투기의 꼬리 날개와 흡입구에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늘날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영향을 받는 테슬라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품의 이미지를 첨단 기술의 상징성과 비교한 논리에 맞추면서 테슬라는 자신들의 자동차 이미지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혁을 가져온 스마트폰과 결부시키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익숙한 기술들이 자동차에 투입되는 것에 대해 저자는 나름 고민해 포인트도 던진다.
이러한 트렌드가 제기하는 문제는 바로 자동차 '코스프레'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단지 겉모습에 불과한 테일핀이나 실제 제트 동력 자동차를 개발하려고 필요 이상의 돈을 들여 새로운 기술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이 제동한 기술이 자동차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동차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술을 위한 기술과 실생활에 적용되는 기술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과연 테슬라는 이러한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회사 전체가 차량 내부의 커다란 스크린 같은 존재가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테슬라의 터치스크린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상당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인 일론 머스크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견해에 달려 있다. 머스크의 팬들에게 있어서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영웅적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나타난 보기 드문 이타적인 천재다. 반대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환경주의를 이용해 자동차를 팔고 보조금을 받으며 비판은 요리조리 피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