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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Feb 05. 2022

노키즈 존은 정당한가?

대선이 코앞이라 그런지, 아니면 세상이 달라져서 그런지 세대와 성별에 대한 갈라치기가 거세다. 차별 논란도 뜨겁다. 사실 차별이라는게 당하는 입장 감정에서 보면 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 논란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적지 않게 드는 요즘이다. 감정으로 접근하면, 부당하게 비춰지는 일들이 어디 한두개일까? 감정보다는 헌법을 다시 읽고 이슈를 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얼마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노키즈 존이 과연 합법적일까 하는 생각을 문득하게 됐다. 장사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이런 룰을 정해도 되는 것일까? 노키즈존은 영업의 자유가 있고, 애들이 시끄럽게 구는걸 불편해 하는 손님들을 배려했다는 점이 명분일텐데, 법리적으로도 맞는 말인지는 글쎄다. 


선택적 거부도 아닌 무조건 거부가 정당한 것일까? 책을 보면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들이 꽤 등장한다. 


저자는 우선 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를 공유한다.

1964년 여름, 미국의 남부 애틀란타주의 한 모텔 주인은 흑인 손님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전부터 흑인은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회에서 민권법이 통과되었다. 이법에 따르면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를 이유로 손님을 차별하거나 분리해서는 안된다. 모텔도 이 법을 따라야 했다. 모텔의 주인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모테런 롤스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64년 7월 2일 민권법이 통과된지 불과 2시간 남짓 지나 롤스턴은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롤스턴은 사업주가 원하는 대로 손님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영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이고, 원하지 않는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며 민권법에 반대했다. 롤스턴은 국가를 상대로 1100만달러, 2019년 회폐 가치를 환산하면 8900만달러로 한화 약 1963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법 때문에 명성과 고객을 잃고 사업이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이유였다.
하트 오브 애틀란타 모텔 대 미국으로 유명한 이 사건은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롤스턴이 이겼다면 1964년 민권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은 더 오랜 세월동안 인종 분리 사회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의 판결로 롤스턴의 주장을 기각했다. 차별을 못해서 손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고 경제적 손실과 무관하게 의회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예전에 한국에서 벌어진 한 장면이다.


2011년 가을 부산의 한 사우나는 구수진씨의 입장을 거부했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였다. 구수진씨는 억울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이기는 하지만 이미 귀화한 한국인이라고 주인에게 항변했다. 하지만 사우나 주인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해도 얼굴이 외국인이라서 안된다"고 했다. 구수진씨는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우나 주인은 경찰에게 "외국인이라 에이즈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손님들이 사우나에 외국인이 오는 걸 싫어한다"면서 사정을 호소했다. 외국인을 받았다가는 한국인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결국 경찰은 구수진씨에게 다른 사우나로 가라고 안내하며 주인이 거부하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대중 시설의 주인이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등을 이유로 손님을 거부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어떤 사우나는 아예 내국인 전용 찜질방으로 영업한다고 한다. 한 대형 찜질방은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외국인들과 목욕탕을 같이 쓰는 것을 싫어하는 손님들이 있어 만들어진 곳이라고 했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


물론 미국에도 여전히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 뉴욕에 있는 한 맥도널드 매장은 한인 노인들 여럿이 1~2달러짜리 커피나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앉아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못마땅해 경찰에 신고했다. 필라델피아의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흑인 청년 2명이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나가라고 요구했다가 이들이 나가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두 사건이 알려지자 모두 인종차별이라고 크게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앞의 애틀란타 모텔 사건이나 부산의 사우나 사건과는 조금 다르게 이 두가지 사건은 대놓고 한인, 혹은 흑인이나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인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과연 똑같이 대응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 거의 분명했다. 한인이거나 흑인이라서 거부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인종차별이라고 여겨졌다. 이에 비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목격하는 차별은 매우 직접적이다. 부산의 사우나 주인은 명확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했다. 내국인 전용이라는 말은 흑백 분리 시대의 백인 전용과 외국인 전용이라는 말은 유색인 전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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