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병원에서 인공지능 기반 진단 및 처방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치자.
의사들이 직접 활용해보니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리는 진단 및 처방은 대단히 그럴듯해 보였다. 헷갈리는 병명도 인공지능은 판단을 내려줬다.
의사들은 그렇게 인공지능시스템이 내리는 진단 및 처방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한 전문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신의 의학 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진단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들을 불러놓고 확인 작업을 했지만 인공지능 시스템의 진단이 옳다는 결과가 나왔다.
과연 다음부터 해당 의사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의학 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진단 결과를 내놨을 때 다시 의사들을 불러놓고 확인 작업을 하려고 할까?
또 환자의 병이 알쏭달쏭하여 보일 때, 자신이 직접 연구 논문을 찾아보거나 하는 번거로운 일들을 하려고 할까?
그리고 해당 대학 병원에서는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의사들을 계속해서 함께 활용할까?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보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는 어느 전문의가 처한 상황을 떠올려봤다. 해당 의사와 병원의 선택이 아마도 진화하는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삶과 사회 구조 변화의 방향을 좌우 할 같아서였다.
천천히 다시 한번 질문하고 대답을 생각해보자.
우선 인공지능이 자신의 의학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진단 결과를 내놨을 때 해당 의사는 계속해서 확인 작업을 하려고 할까?
승부욕이 강해서일 수도 있고, 인류의 자존심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며 병원에 회의를 요청하는 의사들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다수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저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인공지능이 맞겠지 하면서 인공지능이 내려준 진단대로 처방하지 않을런지.. 한 번의 경험은 이후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의사는 환자의 병이 알쏭달쏭하여 보일 때, 자신이 직접 연구 논문을 찾아보거나 하는 일들을 하려고 할까?
지적 호기심이 강한 의사들은 집요하게 자료를 뒤져서 궁금증을 풀려고 할 하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다수는 하나마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인공지능이 진단과 처방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의사로서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렵게 공부 헤서 이 자리에 왔는데, 인공지능 보조 역할을 하는 듯한 자신의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존심에 상처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대한 질문이다. 인공지능시스템 도입에도 적지 않게 돈을 썼는데, 병원은 비싼 월급 가져가는 의사들을 계속해서 고용하려 할까?
때가 되면 인공지능만으로도 대부분의 진단과 처방을 해결하고 있으니, 의사들 수를 크게 줄여도 되는 것 아니냐는 주제가 병원 경영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다. 다수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의사들 수를 조금씩 줄여나가 보자는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학 병원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알 파고 가 이세돌을 누르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 모 아니면 도식으로 정체를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좀 더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부여해 보자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 인공지능이 확산되는 시대, 경제 및 사회 정책을 세우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몫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는 과연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할까?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 기업들은 외부의 견제가 없는 한 인공지능으로 사람을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언급한 의사가 일하는 대학 병원이 인공지능의 위력이 검증됐을 때도 의사들 수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은 어떨까? 지금까지 하는 걸 봤을 때 정부와 정치인들은 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를 방치하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때문에, 인류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정치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 고용 불안, 사회적 안전망 부재 등은 한국 사회의 큰 문제들로 꼽힌다. 불안은 지금의 한국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하는 다양한 일들을 더욱 빠르게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인공지능이 확산된다는 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들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이 확산될수록 불안은 더욱 고조되어 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사회 구조를 다시 짜야하지 않을까 싶다. 양극화로 치닫는 경제구조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우울한 장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을 없애지 못할 거라면 양극화를 줄이는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정치를 바꾸는 것이 해법이다. 알파고로 촉발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인공지능 강국이 되자는 식의 논의에서 그친다면, 인공지능은 기회라기 보다는 다양한 곳에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