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 연구 기업 누멘타 창업자인 제프 호킨스가 쓴 천개의 뇌를 보면 사람의 뇌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오래된 뇌고 다른 하나는 신피질로 불리는 새로운 뇌다. 뇌는 오래된 부분들 위에 새로운 부분들을 추가하면서 계속 진화했다. 오래된 뇌는 본능과 생존에 관한 것이고, 신피질은 지능에 관한 부분이다. 이에 저자는 일반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신피질의 원리를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신피질은 모든 포유류에 있고 사람은 뇌 전체 부피에서 신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악어의 뇌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적절한 신피질이 없다.
결국 사람의 지능이 뛰어난 건 신피질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피질은 종종 오래된 뇌에 종속된다.
신피질은 신경섬유을 통해 뇌에서 오래된 부분들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기관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이것들은 서로 다른 의제와 개성을 지녔지만 어떤 일을 하려면 협력이 필요한 룸메이트와 비슷하다. 신피질은 아주 불공평한 처지에 있는데 행동을 직접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시적으로 숨을 참는 경우처럼 신피질은 일시적으로 호흡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뇌줄기는 우리 몸에 산소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신피질의 지시를 무시하고 통제권을 도로 회수해 간다.
뇌의 이같은 역학 관계는 인류의 삶에 적지 않은 변수다.
우리는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긴 하지만 오래된 뇌가 여전히 남아 있다. 오래된 뇌는 여전히 우억 년의 생존을 거치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 우리는 여전히 세력권을 놓고 싸우고 짝짓기 권리를 놓고 싸우고 여전히 동료 인간을 속이고 훔치고 강간한다. 모두가 이런 행동을 하지는 않으며 우리가 자녀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지만 매일 접하는 뉴스를 보면 모든 문화와 공동체에서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써 덜 바람직한 원시적 행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덜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적 또는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이 모든 행동들은 유용하다.
오래된 뇌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실존적 위험이 되지 않는다. 오래된 뇌의 행동은 사실 성공적인 적응이다. 만약 과거에 세력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의 구성원을 모두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체 인류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저 승자와 패자가 있었을 뿐이다.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행동은 전체 지구의 일부와 전체 일류의 일부에만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오래된 뇌가 실존적 위험이 된 이유는 신피질이 지구 전체를 변화시키고 심지어 파괴할 수 있는 기술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오래된 뇌의 근시안적 행동이 지구 전체를 변화시키는 신피질의 기술 능력과 결합됨으로써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험이 되었다.
저자는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를 사례로 든다.
단순한 논리에 따르면 인구가 더 적을 경우 지구는 인간이 초래한 환경 악화와 붕괴를 겪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에를 들어 세계 인구가 80억명이 아니라 20억명이라면 지구의 생태계는 급격한 변화 없이 우리의 영향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지구가 20억 인구의 영향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다룰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의 행동을 조정할 시간을 더 많이 얻을 것이다. 인구가 많은 대신에 적으면 지구의 상태가 훨씬 나을 것이라는 데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1960년에 30억명이던 세계 인구가 오늘날 80억명으로 늘어났을까? 왜 인구는 30억명에 머물러 있거나 20억명으로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 답은 명백해 보이겠지만 조금 자세히 분석할 가치가 있다.
생명은 아주 단순한 개념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를 최대한 많이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물은 가능하면 많은 자손을 남기려고 하고 종들은 가능하면 많은 장소를 차지하려고 한다. 뇌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이 측면을 돕기 위해 진화했다. 뇌는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를 더 많이 만들도록 돕는다. 하지만 유전자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개체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인간 가족이 먹여 살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식을 낳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가끔 아이들이 너무 적은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이 더 낫다. 일부 아이들은 끔찍한 고통과 운명을 겪고 부모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 슬퍼하겠지만 유전자는 개의치 않는다.
신피질은 인류가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오래된 뇌의 영향력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신피질은 더 큰 그림을 이래한다. 오래된 뇌와 달리 신피질은 세계 모형을 배우고 통제할 수 없는 인구 증가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구 증가를 방치할 경우에 닥칠 불행과 고통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집단적으로 협력해 세계 인구를 줄이지 않을까? 여기서는 아직도 오래된 뇌가 큰 지배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먹음직 스러운 케이크 조각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의 신피질은 케이크를 먹으면 비만과 질병, 조기 사망을 낳을 수 있어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에는 오직 건강에 좋은 음식만 먹겠다고 단단히 다짐할 수 있다. 하지만 케이크 조각을 보고 그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것을 집어 드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서는 오래된 뇌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오래된 되는 칼로리를 얻기 힘든 시절에 진화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뇌는 미래의 결과 따위는 모른다. 오래된 뇌와 신피질 사이의 싸움에서는 대개 오래된 뇌가 이긴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크를 먹는다.
오래된 뇌는 단기 생존과 가능한 한 자손을 많이 남기는데 고도로 적응돼 있다. 오래된 뇌는 자식을 양육하고 친구과 친척을 돌보는 것처럼 나름대로 좋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원과 생식 기회를 얻기 위한 반사회적인 행동처럼 나쁜 측면도 있다. 이것들을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주관적이다. 복제가 목표인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이것들은 모두 성공적인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