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부는 동학 농민운동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청국에 파병을 요청했고 텐진 조약에 의거 일본도 동시에 군대를 보내면서,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일본의 승리. 이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은 청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청일전쟁에 대하 알고 있는 정보는 대충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을 역사작가인 천순천이 쓴 책 청일전쟁을 보면 내가 알아왔던 것보다 청일전쟁은 대단이 복잡한 내막이 있었고, 싸움의 규모도 꽤 큰 수준이었다.
책을 보면 청일전쟁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청국은 일본과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피하고 싶어했고, 청국은 어떤 식으로든 청국과 전쟁을 할 빌미를 찾고 있었다.
당시 청국 실력자인 리홍장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에 러시아, 미국, 영국등을 끌어들이며 외교로 전쟁을 피하려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끈질지게 청국이 싸울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올인했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청국을 향해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이다는 협박 전략을 고수했다. 당시 일본은 국부 강격파들의 목소리가 큰 시절이었다. 온건파인 이토 히로부미도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수뇌부에게 전쟁은 대외 확장에 반드시 필요한 카드였다.
쫓고 쫓기는 게임에서 결국 청국은 빠져 나갈 수 없는 외통수에 걸렸고, 질줄 알면서도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러시아와 영국 등 열강은 무력으로 일본을 견제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적당히 경고했는데 일본이 말을 안듣자 추가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청국과 일본이 싸워서 서로 힘빠지면 나쁠것도 없다는 인식도 외교가에 퍼져 있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국제 정세에서 청일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동학농민운동은 구실일 뿐이었다.
예전에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이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은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보면 청일전쟁은 시작하기전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청일전쟁이 벌어지기 10년만 해도 해군력에서 청국은 일본을 앞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태후가 국고를 사치를 위해 개인용으로 쓰면서, 해군력 증대에 쓸 돈이 바닥이 났고, 이 틈을 타 일본이 해군력 강화에 적극 나서면서 10년후 전력에 역전이 일어났다.
청일 전쟁은 조선에서만 벌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만주에서도 일대 회전이 펄쳐졌다. 당시 일본은 승승장구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북경까지 넘볼 수 있는 지역까지 진출했다.
청나라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강화 조약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청일전쟁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동부아 지역에서 뜨는 해 일본과 지는 해 중국이 벌인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청국 입장에선 질걸 알면서도 싸울 수 밖에 없는 꽤나 가슴아픈 전쟁이었을 것 같다.하고 싶지 않았던 전쟁을 어거지로 해서, 결국 패전한 뒤 강화 조약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 거기서 피격까지 당했던 북양대신 리홍장. 책을 다 읽고 나니 한족 출신의 엘리트 관료로, 지배층인 만주족의 부패를 감내해야 했던 리홍장의 애환이 많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