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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May 22. 2023

내가 있어야 할 곳

여기에 계속 있어 내가 보장해 줄게 / 너는 다른 곳으로 하루빨리 떠나

"드디어, 월요일이다!!"


나도 신입직원일 때가 있었다.

일요일 밤이면 다음날 출근할 생각으로 설레며 월요일을 기다렸다.

(진짜다, 의심스럽겠지만. 지금도 월요병은 없다. 진짜야;)


첫 직장은 지역사회 종합복지관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담당한 지역사회 조직사업은 무척 재미있었다.

지역주민들과 아동, 청소년들, 여성결혼이민자들, 자원봉사자 분들과 함께 하며 사업계획서의 기대효과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나 평생학습(교육) 관련업무를 했던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최대한 제공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져 유독 기뻤다.


함께 울고 웃고, 다치기도 격려하기도 했던 그 시절 입사동기들.

SoSo(소처럼 일해도 괜찮아)밴드를 만들어 복지관 프로그램실에서 점심시간 때마다 우리끼리 광란의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여행을 떠나요"


우리의 18번 곡. 키를 얼마나 올려 불렀더라?

갑자기 목격자들의 눈빛이 떠오른다.

'또라이들 지금은 건드리지 말자.'


우리는 낮에 지역주민 민원을 응대하고 밤 9시~10시까지 해야 하는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 대수였다.

남, 녀 구분은 없다. 그저 일개미1, 일개미2, 일개미3!!!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무거운 후원물품, 책상 나르기, 행사장 세팅, 청소, 환경미화, 눈 치우기까지 주워지는 대로 성실히 했다.


힘들면, 무의식적으로 윗입술이 들리는 거 아시는지요?

동엽신님 분노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업무 중 무심코 서로 눈이 맞는다.

윗입술이 심하게 들려 깊게 파인 팔자주름을 발견할 때는 들린 입술을 입 속으로 말아 넣으며 인중과 팔자주름이 팽팽해지도록 표정을 짓는다.

서로 모습이 우스워 이내 웃는다.

사무실에 우리 위로 아무도 없는 날에는 '어린이날'이라며 무반주일지라도 미친댄스타임을 반드시 가졌다.


입사 1년 후 나는 복지관에서 가장 좋은 자리와 컴퓨터를 차지했다.

사업 5개를 담당해서 수행했는데 그중 한 개 사업은 시에서 우수한 사업으로 인정받아 타 지역 벤치마킹 대상사업이 되었고, 프로포절(외부공모사업)을 잘 작성해서 복지관 내부 직원포상 '브레인상'을 받았다.

이후 사업팀에서 기획팀으로 이동하여 5개월 동안 몇백만 원에서 몇억 원 규모의 프로포절을 7개 이상 당선시켰고, 9개 사업을 관리하며, 책임을 다했다.

복지관 역사상 가장 큰 프로포절이 선정되었을 때 국장님은 무척 기뻤는지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나를 업어주려 했다.


"여기서 계속 일해라, 어디 가지 말고. 계속 있으면 기관에서 대학원도 보내주고 연구도 시켜줄게.

사무국장까지도 해."


'오... 그럴까? 일이 너무 재미있다. 천직인가 봐!'


국장님의 제안은 솔깃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었고, 지원대상자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자원봉사자들과의 관계도 즐거웠다.

가끔 의도적으로 내 결재만 누락시켜 곤란에 빠뜨리는 상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난 네가 더 큰 기관으로 갔으면 좋겠어. 여기 계속 있지 마."


"왜?? 난 재미있는데."


"언제까지 있을 건데. 더 넓은 곳으로 가. 지금 우리 경력이 이직하기에 딱 좋아."


이 얘기를 해 준 동료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다.

중학교 절친이 내가 일하고 있는 기관으로 뒤늦게 입사한 것이다.

1년 먼저 입사했다고 친구한테 어설픈 꼰대짓 많이 했는데...

속 좋은 내 친구 성돌이는 앞에서나 뒤에서나 나를 지지해 주고 세워주며, 우직하게 곁에 서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지금도.


빨리 내보내고 싶었는지 채용공고 정보를 공유해 주고 이력서를 넣어보았는지 가끔 체크도 한다.


그렇게 난, 친구의 등떠밈과 다른 기관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으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유명한 종합복지관 2곳정도에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까지 갔었으나, 불합격되었다.


국내사업, 지역사회복지에 꽂혀있던 때라 NGO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한 NGO단체에서 국내사업 담당을 채용한다는 공고글을 보았다. 큰 기대 없이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컨소시엄사업 참여기관 간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회의 진행을 위해 오전에 외부로 출근했다가 오후반차를 사용해 현장퇴근을 했다.


면접 보러 가는 길, 성돌이에게 연락이 왔다.


"야, 큰일 날 뻔했어. 오늘 관장님 화나서 오후반차 쓴 직원들 전부 휴가 취소했어. 너 외근 가서 천만다행이다."


이런 우연이? 하나님이 면접길을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수월했다. 영어가 또 한 번 걸리긴 했지만, 실제로 시키지는 않아서 무난히 넘어갔다.

(이후로 면접 볼 때 꼭 영어 시키더라.. 죄송합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접 본 기관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경쟁이 치열했는데, 경쟁자보다 내 현장경력이 짧아서 NGO에서 일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았다는 것이 결정적 의견이었다. 현장 물이 덜 들었다는 뜻이다.


얼떨결에 합격이다. 이제 퇴사를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하지?

나를 믿어주고 아껴줬던 사람을 실망시키는 말을 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입사보다, 퇴사가 4배는 더 어렵다.

가영이처럼 산뜻한 안녕은 극소수일 거다. 아마 ㅜㅜ


가영이 퇴사짤 (출처: 네이버 이미지)


퇴사를 말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이직한다는 말을 차마 못 해 유학 간다고 거짓말했다.

관장님은 배신감에 화가 나셨는지, 그 뒤로 내 눈을 보지 않으셨다. 인사도 받아주지 않으셨다.ㅠㅠ

나를 괴롭혔던 상사는 그동안 비합리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부분들을 사과했다.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란다.


성돌이를 비롯해 친한 동료들에게 아쉬움+축하 메시지를 들으며 복지관 업무를 잘 마무리했다.

그러던 중, 이메일이 한 통 왔다. 복지관 실세에게 온 이메일이다.

이메일 내용은 나를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가득했다. 유부남인데. ㅅㅂ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였다.

이 사람은 사회복지를 한다는 사람이, 리더라는 사람이 이렇게 비윤리적일 수가 있지?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 같아서는 어디에 신고할 생각이라도 할텐데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분노만 했었다.

이 사실을 안 성돌이가 한 마디 해줬다.(이 조언은 11~12년 후 빛을 발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 이메일은 잘 보관해 둬. 너 정말 잘 나갔다."


하나님께서 인정과 달콤한 말로 포장된 진흙통 올무에서 안주하고 있을 뻔한 나를 떠나야 할 때에 조용하고 차분하게 건져내시어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가장 적기에 내가 성장하기 가장 좋은 곳, 10년 간 10배 규모로 성장한 지금의 일터로 이동하였다. 먼저 이력서 넣었던 복지관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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