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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May 29. 2023

그래서 무슨 노력을 하고 있니?

말을 들어보면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그뿐인 거니?

셀럽 이름으로 깜지를 적었다. 이 중 한 명은 섭외할 수 있겠지...!


"이 사업 괜찮다. 우리 단체에 장기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아.

BR이 매월 2명씩 셀럽 섭외해서 인터뷰 진행해! 영상촬영은 라니가 DSLR로 하면 되겠다."


'?????????'   

 

NGO단체에 입사 후 처음 담당한 국내사업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국내지원사업_대상자를 직접 선정하고 지원하는 사업(재활치료 및 수술비, 긴급지원 등)

2. 배분사업_사업비 배분 및 모니터링(장애아동교육지원사업, 방문물리치료사업 등)

3. 장애인식개선사업_유명인(셀럽, 사회저명인사 등)을 섭외하여 장애인식개선 관련 릴레이인터뷰 및 온라인 서명운동 진행, 캠페인 참여시민에게 리워드 배포


1번과 2번은 후원자 기부금을 활용하여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이었고,

3번은 지자체 지원사업이었다. 사업수행 평가결과는 매우 우수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던 소속기관에서는 셀럽과의 네트워크를 강화시킬 수 있는 이 사업을 자체적으로 지속수행하여 내부역량을 강화시키고자 했다.  

 

지자체 지원사업이었을 때는 지원예산으로 인터뷰 진행 아나운서와 영상촬영 PD 및 카메라 감독을 섭외했지만, 지원 종료 후로는 기관이 자부담하여 수행해야 한다.


모금규모가 작았던 우리 조직은 매월 예산을 들여 홍보영상을 제작하기에는 무리가 컸다.


당시 같은 부서 맨파워를 소개하자면,

내로라하는 국내 NGO단체에서 온 온라인모금 전문 직속상사 1명(에티),

톡톡 튀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로 없는 TO를 만들어 입사한 홍보담당 인턴간사 1명(라니),

그리고 복지관에서 사업수행경험이 조금 있는 나(BR)였다.

세 명에서 대부분의 사업을 하니 서로 니일 내일 없이 보이는 대로 해결했고, 없는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며 매일 같이 야근을 했다.

(이후 우리 조직은 급성장해서 매월 사람이 눈덩이 불어나듯 늘어났지만, 이 3명은 전우애로 오랜 시간 함께 했다. 서로 애잔했다.)


에티는 온라인모금을 하기 위해 이 조직에 입사했는데 조직내부사정으로 갑자기 국내사업까지 관리하게 된 상황이었다.

복지관 업무 수행 경험이 없는 상사와 함께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꽤 어려웠다.

가장 큰 어려움은 대상자 선정기준이 다른 것이었다. 모금사례로 적합해야만 지원대상자로 선정된다.  

지원받을 자격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모금이 잘 될 것 같지 않은 사례(story)는 지원 대상자에서 후순위가 되었다. 이해는 한다. 예산이 부족하니까 모두를 지원할 수 없었다.

모금이 잘되어 예산규모가 컸다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비밀보장원칙과 생명존중원칙 간 딜레마가 무척 컸고 내적갈등이 해결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복지관에 비해 지나치게 플렉서블한 업무 수행과정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유연한 사업수행 방법과 잦은 변동사항, 사업결과에 대해 담당자가 오롯이 책임지는 것은 어려운 숙제였다. 복지관은 연말에 미리 계획한 연간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차근히 업무성과를 내지만, 이 조직은 매일 의사결정이 번복됐다. 마케팅적 사고로 환경과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다르게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은 이전에 계획한 대로 진행하면 안 된다. 상사의 달라진 생각에 따라 수시로 사업수행 방향과 방법을 변경해야 했다.


"모금가의 성과는 인센티브를 줘야 할 만큼 인정받아야 해. 사업은 성실히 수행하는 대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모금은 다른 영역이야.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은 담당자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어. 더 높은 실력이 필요해. 스트레스 강도가 달라."


"아니죠, 사업이 있으니 모금을 하는 거예요. 사업가들도 깊은 고민을 하고 대상자를 만나며 사업을 수행하고 계획해요. 그에 따른 행정업무도 무척 많고요. 수고가 모금가 못지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사업은 어떻게 하나?”


"목적 없이 모금을 합니까?"


출처: https://thebluexpanse.tistory.com/222


모금이 중요하냐, 사업이 중요하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모금만 해온 사람과 사업만 해온 사람은 발상의 본투비가 달랐다.

 

지자체의 장애인식개선사업 지원이 종료되며, 나는 이전보다 2배 이상의 셀럽을 섭외해야 했고,

새벽 3시까지 영상 편집을 했었다. 그리고... 인터뷰 진행자로 출연해서 미디어에 수많은 흑역사를 남겼다.

(인생 암흑기 모습이 영원히 남았다. 사라지고 싶다.ㅠㅠㅠㅠ)



하루는 촬영장에서 에티와 함께 셀럽을 기다리다 업무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왜 사회복지를 하고 있니?"

"저는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 싶어요. 모든 아이들이 태어난 환경에 상관없이 꿈을 이루며 살아갔으면 해요."

"그래? 그럼 제프리삭스의 <빈곤의 종말>을 읽어보았니?"

"아니요."

"그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는 게 없구나. 말 뿐인가 보네?"

 

동공이 흔들린다. 에티...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온다.


참고로 에티는 모든 사람과 관계할 때 3단계(내 기준)까지 후비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1단계는 가벼운 호의를 표현하는 관계, 2단계는 서로의 강/약점을 아는 관계,

3단계는 자신만 아는(혹은 자신도 몰랐던) 깊숙한 내면을 직면하게 하는 관계)

이 때문에 직원들은 에티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완전 적이 되거나 완전 팬이 된다.

눈물콧물 다 흘리고, 기절도 했었는데.. 나는 팬에 가까웠다.(변탠가?)


부끄러웠다. 꿈을 위해 일한다 말하고 다녔지만,

정작 스스로 살펴보니 일하는 재미에 취해서 공부하는 것도 없었고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고민을 더 하고 있지도 않았다.

말로만 사명이 있어 일한다고 했지, 단련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셀럽과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여기에 왜 있고, 지금 뭐 하고 있지?

지역사회에서 벗어나 전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할 수 있는데

당장의 업무 적응에만 급급해서 살고 있구나.

빈곤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풀어헤친 것 같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고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나님, 저 정말 지혜와 통찰력을 갖고 싶어요. 어떤 노력을 먼저 해야 할까요?'


통찰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경험과 지식, 정보가 있어야 통찰력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독서를 싫어했지만, 주말에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골라 보았다.

책읽기는 작심삼일로 종종 끝나지만, 오늘도 계속 다시 시작한다.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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