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제 보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딜라이트R Jun 04. 2023

동정과 긍휼의 차이

존귀한 생명, 우리가 살려야 한다.

나는 불쌍히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힘든 내색을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도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또는 '긍휼히 여겨주세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NGO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조직은 온라인모금 준비를 위해 홈페이지, 소식지 개편에 박차를 가했고, 온라인 모금 사례를 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모금사례는 시각적, 감성적으로 지원 필요성을 어필하여 기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자료이다.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의 사연(꿈, 가정환경, 경제적 상황 등), 사연 주인공의 외모 및 나이, 지원 시급성과 효과성은 모금 사례로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직속상사(에티)가 온라인모금가였기에 모든 팀원은 모금을 최우선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나 또한, 담당사업을 수행한다기보다 모금 적합사례를 찾는 일을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성공적인 모금을 위해 지원대상자 개인사정들을 낱낱이 밝히며, 대상자의 어려운 모습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노출시켰다.

대상자 선정기준에 부합하더라도 모금이 잘 될만한 사연이 아니라면 지원 대상자에서 탈락되었다.

지원신청 대상자를 만나고 다녔던 나는 모금자료를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괴로웠다.  


'왜 이렇게까지 대상자를 불쌍히 보이게 해야 하지? 대상자 가정은 이 스토리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지원아동이 어른이 되어서 이 자료를 보게 되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까? 그래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니 정보를 공개해야겠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공개해야 해? 그럼, 다른 방법은 있니?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잖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텐데? 그래도 이게 맞는 방법인가?'


이성과 감정이 계속 부딪힌다.

담당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다.

나와 맞지 않는 업무인 것 같다. 가치관이 무한충돌 한다.

참다못해 에티에게 말했다.


"지원사업 대상자 선정기준으로 충분한데 왜 선정이 안 되나요? 우리 기관이 그렇게 예산이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개인사연을 낱낱이 공개해서 모금을 해야 해요? 저는 대상자가 수치스럽지 않게 비밀을 보장하며 신뢰를 쌓고, 필요한 지원을 해서 자립을 돕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더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저 못하겠어요."


"BR아, 긍휼에 대해 생각해 봤어? 대상자들을 긍휼히 살펴봐."


"긍휼이요? 글쎄요. 저는 동정, 긍휼. 그런 단어들 싫습니다. 하나님한테도 긍휼히 여겨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뭐라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보나요? 그럴 자격도 없고요."


"긍휼이 뭔지 잘 생각해 봐.. 네 마음속에 사랑이 없어."


'무슨 말이야? ㅡㅡㅋ(긁적)'


<긍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다.


6개월째 긍휼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중증장애가 있는 자녀 1명과 고등학생 자녀 1명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장애자녀 치료와 양육으로 인해 어떠한 경제활동도 불가했다.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떠나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직, 법적 부부로 남편 소득이 조회되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니의 아픈 자녀는 심한 척추측만증으로 허리가 107도까지 휘어 내장이 압박되었고, 생명이 위독했다.

자녀를 살려야겠다는 마음만으로 수술을 감행했고, 이 사정을 안 의료사회복지사가 우리 기관으로 의료비 지원신청을 한 것이다.


107도. 어느 정도인지 상상해 보세요.

90도가 직각, 직각에 17도만 더하면 돼요.


내 허리가, 자녀의 허리가 107도 휘었습니다.



라니와 함께 대상자 가정을 만나고 온 날부터 이 가정에 반드시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의기투합해서 모든 홍보채널을 동원했다.

네트워크 되어 있는 봉사단체, 회원 이메일, 소식지 등을 통해 최선을 다해 이 사연을 알렸다.

오직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후원해 주었다.

어떤 분은 직접 어머니를 만나 고액의 후원금을 전달해주시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재활치료까지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몇 차례 만났던 어머니는 항상 담담한 표정이었는데

수술 이후 긴장이 풀리셨는지 눈물을 뜨겁게 흘리셨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아직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아... 긍휼이란, 동정과는 너무도 다른 단어였구나. 긍휼은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 어느 어머니가 자녀를 불쌍히 동정하며 보겠는가. 그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며, 바로 옆에 서서 함께 울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며 진정을 다해 마음을 쏟는 것이 긍휼이구나’


실연당한 사람처럼 펑펑 울었다.

내 마음에는 긍휼함이 없었다.

모금사례는 동정의 대상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금은 단순히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었고,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세우는 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딜레마가 깨끗이 정리되었다.

우선하는 원칙이 무엇이었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본질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오늘도 저를 긍휼히 여겨주세요.' 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무슨 노력을 하고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