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정성스럽게,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부장님, 이런 일 안 하셨잖아요ㅎㅎ 여전히 칼각이시네요~! 저는 엘베 타시려는 줄 알았어요."
"아, 그래요?ㅋㅋㅋ 직원들 다 바쁜데 제가 해야죠, 입간판이 엘베에서 내리자마자 잘 보이나 보려고."
지부직원들이 본부로 방문했던 날.
지부 환영 입간판을 사무실 입구에 두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시선이 떨어지는 곳에
환영문구가 바로 보이도록 각도를 맞추고 있었다.
기업모금팀에 있을 때 나에게 업무를 배우며
함께 일했던 대리님이 지나가던 길에 인사차 말을 걸었다.
나는 행정서류(공문, 내부기안, 품의서, 제안서, DB 등),
홍보 디자인, 행사장 세팅, 행사 리허설,
미팅 준비과정에서 부서원들과 아래 대화를 종종 한다.
"예쁘게 해요, 예쁘게. 나 예쁜 거 좋아해."
"저도요, 부장님. 저도 예쁜 거 좋아해요."
"응, 그러니까 더 예쁘게 해요. 각 맞추고. 다시, 다시."
언젠가부터 준비과정에 께름칙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해소시키고 지나가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부터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의 국장님이 생각났다.
이 조직에서 만난 두 번째 국장님, 경이 국장님!
경이 국장님은 사회복지사 1세대로,
12년 전 아무 기틀 없던 이 조직의 사업 기초를 잘 쌓아주셨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말이 잘 어울리시는 분이다.
정의롭고, 의리 있고, 사랑이 많고 진실된 리더였다.
많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2011년도 어느 날, H기관(산하시설)에서 우리 행사가 계획되었다.
넓은 강당의 일부 공간을 사용할 예정이었고,
강당에는 많은 의자가 있어서 사용하는 의자 외 남는 의자(약 50개?)를
한편에 모아두었다.
경이 국장님이 나타났다.
"이 의자들 뭐야? 얼른 치워. 깨끗하게."
"네넵!"
살짝 마음에 걸리는 게 있을 때
'괜찮겠지'하고 넘어가는 모든 것은 국장님께 잡혔다.
디테일.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디테일이다.
경이 국장님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길 바랐다.
행정서류 한 줄, 한 글자의 오타에도 자비란 없다.
라니는 가끔 농담 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속닥인다.
"BR님은 10년 후 국장님처럼 될 것 같아요."
(웃음끼 없이 말하는 게 킬포)
에티와 함께 일할 때,
팀의 가장 선임이었던 나는 온라인모금과 방송모금을 서포트하며
우리 조직이 SBS와 함께 할 수 있는 큰 프로젝트가 성사되는 일에 기여했다.
그때는 방송모금 황금기였기에
국제사업을 위한 모금액이 우상향 성장폭을 크게 그렸고,
국제협력사업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에티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BR아, 너는 모금을 잘해. 방송모금해라.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모금지식을 전수해 줄게."
에티를 신뢰했던 나는 오랜 시간 고민을 하다 생각을 정리했다.
<잘하고 싫어하는 일보다는 못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나는 여전히 사업이 좋았다.
"저는 사업을 하겠습니다."
나와 에티는 사업을 보는 관점이 아주 달랐다.
내가 처음 사업수행 방향을 A방향으로 계획하면,
에티는 전혀 다른 방향인 B방향으로 수정한다.
B방향으로 수정된 사업계획을 경이 국장님께 혼자 보고하러 가면
국장님은 버럭 하시며 처음 내가 계획했던 A방향으로 지도하신다.
억울한 마음도 들면서
당초 내가 생각했던 사업 방향대로 추진할 수 있게
에티를 설득할 수 없었던 나의 무능에 화가 났었다.
'당초 계획은 그러한 방향이었는데 에티가 사업방향을 이렇게 수정한 겁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책임을 회피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데, 나에게 그늘은 없었다.
여기저기 땡볕이었고, 매일 맨 땅에 헤딩하며 다시 처음부터를 반복했다.
국장님은 참다못해 이런 말도 했었다.
"내가 면접을 봤다면, BR을 뽑지 않았을 거야." ,
"BR아, 그냥 내 방(사무국장실)으로 자리 옮겨서 같이 일할래?"
'내가 왜 사업한다고 해서 이 고생일까. 그냥 모금한다고 했으면 편했을 텐데.'
'하... 진짜 이대로 안 나간다. 경이 국장한테 반드시 인정받고 퇴사한다.'
힘들 때, 눈물을 훔치며 몇 번씩 되새겼다.
나는 매일 국장님께 인정받으려 아등바등 이었다.
책 잡히지 않으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두려움이 기반이 된 업무였다.
괴로운 마음에 매일 기도했었는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이토록 노력한 적이 있었나?
내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자.
여태껏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중요했네.
이제 더 중요한 것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그 말과 행위의 의도를 살피신다.
내 마음의 중심, 내 모든 말과 행위의 의도를 스스로 살펴보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생각하고 행동하자.
예쁘고, 더 예쁘게..
2011년도 가을, 대기업 복지재단에서 일하던 데이빗이 기업모금팀 팀장으로 입사했다.
데이빗은 팀장이지만 팀원이 없었다. 우리 조직에서는 기업모금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복지관 업무 경험이 있는 데이빗 아래로 국내사업 담당인 나를 배치시켰다.
데이빗은 나에게 매일같이 얘기해 줬다.
"넌 최고의 팀원이야!"
"팀원이 하나뿐인데요? 최고여 봤자 뭐해요.ㅋㅋㅋ"
"그래도 최고의 팀원이야!ㅋㅋ"
데이빗은 팀원이 계속 늘어나도 꾸준히 얘기해 줬었다.
"넌 최고의 팀원이야."
데이빗은 기업모금을 총괄했고, 탁월한 조직경영자가 되는 것을 꿈꿨다.
나는 기업모금을 충실히 서포트했다.
데이빗은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
나의 주특기였던 프로포절 작성 역량을 한껏 발휘했고,
고액의 사업재원을 계속 마련하며 핵심사업들을 확장시켰다.
복지관 업무경험을 토대로 산하시설과의 협업도 활성화시켰다.
타인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맡겨진 모든 일들에서 의미를 찾아 성실히 했고,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어느 날, S기업 임직원봉사활동으로 진행할 걷기 대회를 A기관(산하시설)과 협력하여 준비했다.
기업 담당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A기관 준비사항에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었고,
나와 기업 담당자, A기관 담당자 3명은 현장에서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행사 마무리 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는 중이었다.
데이빗이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A기관 관장님이 국장님한테 연락을 했어.
S기업 행사 때, BR이 임직원봉사자 명단을 산하시설 담당자에게 집어던졌다고 말하셨대."
"제가요? 말도 안돼요. 제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해요. 게다가 그 자리에는 S기업 담당자도 있었어요.
상식적으로도 후원기업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어느 누가 그럴 수 있나요?"
"맞아. 나도 BR이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놀라운 거는 국장님이...
담당자에게 확인해 보겠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산하시설 관장님한테 즉답하셨대.
내가 아는 BR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보통은 관계자들에게 사실 확인한 후 피드백을 주거든."
나를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안다.
누군가가 나를 확신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까다롭게 완벽을 추구하는 경이 국장님이다.
나를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생각했던 분이
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반전에 놀라며,
가슴이 뭉클했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경이 국장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수록
인정과는 멀어지고 마음에 오기가 차올랐었는데,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였더니,
사람의 인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