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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Jun 27. 2023

머리를 찢어라

아직 찾지 못했을 뿐, 가능한 방법은 늘 존재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11년 전쯤이었을까.

P기업에서 사회공헌활동 협력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다.

매월 1개의 모금 프로젝트를 기업 홈페이지 사회공헌채널에 개시하여 고객들이 기부에 참여하면, 모집된 기부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를 통해 배분받아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모금회로부터 사업비를 배분받으면 행정업무가 몇 배는 늘어나 대부분의 NGO는 모금회 협력사업을 지양했다.

우리도 그러했다.

매월 배분받는 소액기부금으로 인해 진행해야 하는 행정절차는 몹시 성가신 일이었고, 매월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발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비효율적인 사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거 힘들 것 같은데요, 우리 재단에 별 유익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일주일만 더 생각해 보자."


나는 이 사업에 회의적이었다.

우리가 모집할 수 있는 기부규모에 비해 행정업무가 비대했고 이 후원금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 단체 사업 수행에 아무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빗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한 기업, 한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소중했고, 관계형성을 통해 협력사업 확장 가능성을 기대하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행정업무를 최소화하면서 기업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우리 단체에 유익을 남길 수 있는 방법,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더 생각하기로 한 일주일 동안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며, 지혜 주시길 기도하던 중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이거 어때요? 우리는 산하시설이 많잖아요! 매월 산하시설을 대상으로 재원이 필요한 사업(프로그램)을 공모해서 선정해요. 선정된 사업 지원 대표사례를 P기업 웹페이지에 공개해 모금한 후 사업비 배분을 해주는 거예요. 모금회의 배분사업을 우리가 직접 수행하는 게 아니라 산하시설로 2차 배분을 해주는 거죠. 우리는 산하시설이 사업기간 동안 사업을 잘 수행하도록 돕고, 모금회로 결과보고자료를 잘 검토해서 송부하는 거예요!"


"오! 좋은 아이디어다. 이런 사업수행 구조가 가능할지 모금회와 상의해 보자!"


당시 본부는 산하시설과의 연대감이 약했다.

산하시설 입장에서는 본부에서 내로라할 지원이 없었기에 로열티를 낮게 느끼고 있었다.

이 배분구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P기업의 기부금은 모두 우리 단체가 받고, 기업 CSR사업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으며, 나는 행정업무를 최소한으로 해도 된다ㅋㅋ. 본부로서 산하시설이 필요한 사업비를 배분해 줌으로 본부의 책무를 조금이나마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산하시설의 본부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되었다.


기쁜 마음에 얼른 모금회 담당자와 통화했다.


"2차 배분이라...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내부적으로 논의해 볼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금회로부터 답변이 왔다.


"만일 2차 배분을 수행한다면 1차 배분기관인 귀 단체가 모든 배분사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네, 물론이지요. 자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한 번 함께 해보아요!"


이렇게 모금회에서는 우리 단체와 함께 2차 배분구조를 처음 실행하였고, 우리 단체는 설립 이래 최초의 공모사업을 진행하며 본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여 산하시설과의 스킨십을 높일 수 있었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모금회와 우리 단체는 돈독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했다.(몇 년 후 모금회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협력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제안하여 우리 단체 최초 최대규모의 고액기부 사업을 유치하는 성공을 경험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데이빗의 한 마디는 나를 더 기도하게 했다.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믿고 지지해 주며

실행토록 허락해 준 그 담대함은

크고 새로운 일을 차곡히 만들어갈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서서히 기업가정신을 좇는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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