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함으로 누리는 궁극적인 축복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산산조각 나서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었다.
부서진 난파선 잔해처럼 쓸모없이 둥둥 떠 있던 중 이스라엘에 갈 기회가 생겼다.
<베드로의 빈 배(눅 5:1~11)>에 꽂혀서 오랜 시간 자학을 했던 때였다.
이스라엘에서 여러 곳을 순례했는데, 아래 세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 갈릴리 호수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난 곳이자, 다시 만난 곳.
베드로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를 만났다. 두 번 다.
예수를 처음 만난 날과 부활한 예수를 다시 만난 날은 베드로에게 데자뷔를 일으킬 만큼 비슷한 상황이다. (재미있으니 어떤 상황인지 꼭 찾아보길.. cf. 누가복음 5장, 요한복음 21장)
2. 제롬의 서적
차기 교황으로 유력했던 엘리트 제롬. 그는 정치력이 부족해서 결정적인 순간 시골로 쫓겨났다.
항상 권력 가운데 있던 그가 전부를 잃은 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어린 아기들의 유골더미였다.
알고 보니 그곳은 헤롯 왕이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쯤 예수를 죽이려 또래 나이의 남자아기들을 모두 죽이고 매장한 곳이었다.
제롬은 생각했다.
'아가들도 세상의 빛을 못 보고 순교했는데.. 내가 뭐라고!'
즉시 그 자리에 서적을 만들어 다양한 언어로 표기된 성경을 그의 생이 다할 때까지 세계 공용어로 번역해 내어 오늘날 성경이 전해지게 기여했다.
3. 바울이 갇혔던 감옥
동그랗게 파여있는 곳이 바울이 갇혀있던 감옥터라고 한다.
로마시민권, 재력, 지식, 권력을 모두 갖춘 사울이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중 예수(영)를 만나 모든 걸 버리고 자신이 핍박했던 전도자의 삶을 택한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바울은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 지내며 수많은 옥중서신(신약성경들)을 남겼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고백한다.
여행 마지막 날 즈음 이스라엘에 함께 간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해준다.
"지금 베드로의 빈 배처럼 삶이 텅텅 비었다고 했잖아. 혹시 말이야.. 베드로, 제롬, 사울처럼 BR의 자아가 비어지는 시기이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의 BR의 삶이 그들처럼 예수님으로 어떻게 가득 채워질지 너무 기대돼!"
정말 그럴까?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다.
목표만 보고 달려오던 중 그것이 사라져 불안했는데, 큰 위로와 심리적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로버트가 나를 찾아왔다.
로버트는 직장 내 나의 멘토로 리더십, 조직관리, 영성을 위해 가까이에서 도와주시며 스스로 답을 깨닫게 하거나 방법을 찾아가도록 부드럽게 조력해 주시는 상담전문가이자 전문 디자이너이고 스승님이다.
내가 심란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무척 정확한 타이밍에 먼저 찾아와 주신다.
(마치 CCTV로 관찰하고 있다가 이때다! 하고 등장하는 것처럼. 정말 신기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로버트가 정리해 준다.
"BR아,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다'라는 표현을 하잖아? 그런데 진짜 내려놓으려면 단계가 있어. 1단계는 내가 하고 싶은 거를 모르는 상태야. 내가 인생의 주인도 아니야. 주변을 헤매지. 대다수가 이 경우야. 2단계는 내가 주인이 돼 보는 거야.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서 많은 노력을 해. 3단계는 내려놓는 단계. 이 단계는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보아야 가능한 단계야. 내 자리에 예수님이 앉으시도록 의식하고 스스로 자리를 비키는 거야. 힘을 빼는 거지. 너는 3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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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감염이 극성이라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오리고기를 구워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우리 엄마의 보통모습이라 대수롭지 않았는데 문뜩,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해서 해야 진정한 탁월함이 나타납니다."
아.. 직원들이 상사에게 평가 잘 받으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상사가 먹을 고기를 굽지는 않지.
사랑해서. 애통한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들은 모두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사를 선물해 주고, 해로운 상황을 만들어줄까?
최선의 것을 준다. 사랑에 눈이 멀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목숨도 기꺼이 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탁월함과 사랑해서 보여주는 탁월함은 본질이 달라 주고받는 기쁨의 차이가 크고, 최선의 깊이가 다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 그 진정성을 마음으로 느끼고, 거울처럼 살펴진다. 이는 탁월함의 지속가능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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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에는 홍정길 목사님의 <하나님의 이름은 자유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조우하시며 처음 자기소개를 한다.(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출 3:14 중)
여기서 홍정길 목사님은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로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후 책의 내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인간이 죄, 질병, 율법뿐 아니라 죽음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게 하셨음을 서술한다.
책을 읽을수록 온몸에 전율이 돌았다.
자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자유를 주기 위함이라니!
토요일 오후, 대학원 원우들과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운전 중 뜬금없이 성경구절 하나가 강렬하게 떠오른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갑자기 머릿속에 모든 퍼즐들이 맞추어진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중)'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기쁘게 하고 싶어 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기뻐하는 일을 골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랑하는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죄 지을 염려가 없어 통제(율법)가 필요 없다. 누가 시켜서,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 된다. 좋아서 하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에 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탁월한 결과를 나타낸다. 상대방이 무슨 행동과 말을 해도 포용된다. 긍휼한 마음이 들어 인내하고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 옳고 그른 게 없어지고 기준은 오직 성경말씀 뿐이 된다.
모든 게 허용되고 만물이 아름답게 보였다.
정수리가 뚫려서 하늘로 이어진 기분이다. 몸이 붕 뜨면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소름 끼쳤다.
하나님의 유일한 명령. '사랑하라.'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하는 KEY였다.
나는 ENTJ이다.
공감을 학습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과 의도가 내 것처럼 투명하게 느껴졌다.
행복감, 기쁨, 사랑, 슬픔, 초조함, 분노, 아픔, 미움 등이 절실히 느껴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로버트가 또 찾아와 주었다.
어지럽혀진 내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해 준다.
사랑하면, 자유롭고, 기쁘다. 사랑하지 않으면, 자유하지 않고, 기쁨이 사라진다.
모든 현상이 연결됨을 깨닫게 도와준다.
사랑함에 기반한 사람들과 두려움에 기반한 사람들에 대한 인지가 명료해진다.
하나님이 중요한 것(사명)을 가져가신 이유는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분은 나에게 마흔에 한 획을 그을 업적을 남겨라.
사회 소외계층이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사회복지정책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
우수한 논문과 지식을 남겨라.
라고 하신 적이 없다.
다만, 계속 말씀하시는 것은
"사랑하라."
너의 가족을, 너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너의 친구를, 너의 원수를, 너의 이웃을, 이 사회를,
그리고 너의 하나님을.
사명보다 중요한 것이 이것이었다.
사랑하라.
사명은 그다음이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땅보다 길고 별처럼 셀 수 없는 그의 사랑에 어찌 아니 기뻐할 수 있을까?
매일 기쁜 오늘
바로 여기가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