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 다들 조수석에 앉는 걸 싫어하는 듯하다. 싫어해야 한다, 하고 어떤 무언의 합의가 되어있는 듯도 하고. 운전석보다 조수석의 취급이 더 좋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자주 있다. 아니, 어떻게 운전석보다 나쁜 좌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운전석과 나 사이엔 운전을 하기 전에도, 운전을 시작한 후에도 비록 전혀 다른 형태일지라도 어떤 무형의 선이 딱 그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정확히 구분된 좌석이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가 없다. 결국 그런 점이 나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운전석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분한다 치자. 그 후 나머지 좌석을 비교하더라도 조수석이 다른 좌석들에 비해 부족한 건 전혀 없었다. 아마 이 역시 조수석에 관해 예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하지만 한 번 손바닥 뒤집듯 완전히 뒤집힌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상석에는 어른이 앉아야 한다는 상투적인 말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자리는 권력과 굉장히 강력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뒷좌석에 앉는 걸 버릇 들여왔고, 그래서 운전석과 조수석은 늘 어른들의 자리이므로 내가 감히 앉을 수 없는 자리라고 여기며 자라왔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갑작스럽게 그 자리의 권력관계가 반전되었다. 아마도 군대였을까. 아마도 회식을 가기 위해서 차에 탑승할 일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뒷자리를 열었는데 선임들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왜 네가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타려 하느냐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마치 1+1이 왜 2냐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내 내면이 어른화 되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파편적이었고 모두 이런 파격적인 규칙의 반전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몸살이 나서 골골거리는 와중에 죽이라도 삼키는 마음이 되어 1+1이 3이라는 사실을 되뇌어 왔지만 역시 상식이란 습관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늘 의식하며 앞자리가 낮은 자리, 조수석이 낮은 자리 이렇게 되뇌어야 했다. 그럼에도 난 조수석에 남아있는 그 권력의 희미한 향기 때문에 왠지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되곤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조수석의 매력은 그런 권력 대행이 된 듯한 감정에만 있진 않다. 앞좌석에서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그 탁 트이고 아름다운 광경들도 물론 장점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뒷좌석의 협소한 유리, 혹은 앞좌석 사람들의 어깨와 어깨, 그 협곡 같은 곡선 틈새로만 겨우 볼 수 있는 풍경과는 비교가 불가한 풍경들이 운전석과 조수석을 통과한다. 제주도에서는 직선을 그대로 꽂아둔 게 아닌가 싶은 높은 나무들 사이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내리막의 1차선 도로를 통과할 때, 이게 정말 실존하는 풍경인가 볼을 꼬집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최고의 장점은 아니다. 조수석이 가지는 정말 최고의 장점은 바로 배경음악을 자유자재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운전을 해야 할 때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음악에 있었다. 차 안 가득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으면 왠지 음악의 욕조 속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영화 콜레트럴의 택시기사, 맥스 역시 킬러 빈센트를 뒷좌석에 싣고 있었음에도 그루브 아마다의 hands of time 같은 음악이 있었기에 침착하고 부드러운 운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조수석이라면, 더군다나 운전자의 허락을 받아서 마음껏 음악을 선곡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되게 마련이다.
다 함께 듣는 음악을 선곡하는 건 꽤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나 하나의 귀도 만족시키기 힘들어서 수십 번 음악 리스트를 휘젓는데 동승자들의 취향까지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동승자들의 음악 취향을 일일이 알 리도 없고, 그렇기에 결국 음악 선곡은 확률론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적당히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거쳤을 시기의 유행가들을 쫙 펼쳐두고 그중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던 음악들을 하나하나 펼쳐 든다. 자 이 노래는 어때! 의기양양하게 틀었는데 모두 묵묵부답이면 실패. 얼른 다음 노래를 선곡한다. 자, 이번엔? 콧노래가 나오거나 어깨를 들썩거리면 성공이다. 나는 나와 동승자들 사이에서 함께 지나온 시대와 그를 대표하는 유행가의 비트 속도만큼 그들과 유대감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되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기를, 함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음악을 내 손으로 직접 선곡할 기회를 영원히 손에 쥐고 있을 수 있기를 기원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결국 도착지에 다다를라치면 마치 노래방 시간이 1분 남은 것처럼 재빠르게 다음 곡을 선곡해서 클라이막스를 틀었던 이유다.
하루는 휴가를 가는 팀원 분이 블루투스 마이크 리스트를 스크롤하고 있기에 왜 보고 있느냐 물었더니, 요새는 노래방엘 못 가니 자동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휴게소에 서서 한차례 노래를 부르는 무리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오, 그런 방법이. 그렇다면 다음엔 나도 먼 거리를 여행할 땐 블루투스 마이크를 챙기리라. 동승자들과 더 끈끈한 유대감을 쌓으리라. 혼자 다짐했다.